대법 “국가 손배 책임 인정
소멸시효 주장은 권리남용”
후손들 2860억 가량 받아
60년대 공단조성 강제 수용
농민들 땅 뺏기고 누명까지
반발하자 감금·폭행·고문
재재심 곡절 끝에 명예회복
1960년대 박정희정권의 불법행위인 ‘구로 분배농지 소송사기 조작사건’으로 땅을 빼앗겼던 피해자의 후손들이 반세기를 넘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최종 인정받았다. 일부 재재심(재심판결에 대한 재심소송)까지 거친 오랜 다툼은 결국 국가가 2800억여원을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로 끝이 났다.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상 책임을 인정한 이날의 판시는 구로 분배농지 사건과 관련한 여러 하급심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신·박상옥 대법관)는 구로 분배농지 사건의 피해자 소송수계인 350여명이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와 손해배상을 청구한 4건의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각각 2013∼2014년 진행된 원심에서 유족들의 소유권이전등기 청구는 등기부 취득 시효 완성 등을 이유로 기각됐지만,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됐다. 이날 대법원의 주문에 따라 국가가 피해자 후손들에게 지급할 배상액은 이자까지 모두 2860억원가량인 것으로 계산됐다.
이번 소송의 피해자들은 60년대 박정희정권으로부터 재산권을 포기당하고 소송 사기범으로까지 몰렸던 이들이다. 강제로 내쫓겼던 농민들은 정부를 상대로 “농지를 돌려달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지만, 국가는 검찰을 동원해 소송사기 수사를 벌였다. 고문과 구타, 감금이 동반된 수사 결과 일부는 민사소송 취하를 약속하고 풀려났고 일부는 공문서 조작 등을 자백해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국가는 형사재판 결과를 토대로 민사소송에 대해 재심을 청구해 승소했다.
2008년에 이르러서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구로 분배농지 사건에서 박정희정권의 불법 연행과 영장주의 위반 등 부당한 공권력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피해자의 후손들은 재심 판결에 다시 재심을 청구하며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요구했다. 광범위한 불법행위였던 탓에 다수의 사건이 진행됐고, 재판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피고가 법무부장관인 상태에서 검찰이 소송사기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재판부들은 “관련 사건 결과의 도착을 기다린다”며 ‘추정(추후 지정)’ 선언을 거듭해 왔다.
대법원은 이날 오랜 법적 다툼에 종지부를 찍으며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되고 인과관계도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국가가 “1970년대에 일어난 불법 행위라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항변했지만 대법원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1년 무죄 판결이 다시 확정될 때까지는 피해자들의 권리행사가 곤란했다는 판단이었다.
법무부는 그간 구로 분배농지 사건에 대해 “기계적 상소가 아니라 법리적 최종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는 사안”이라는 입장을 펴 왔다. 구로공단의 지가 상승과 개발 이익, 등기부 취득 시효 등을 놓고 대법원의 판단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4건의 상고심에서 동일하게 국가 책임이 인정되면서, 법무부가 관련 사건들에서 전향적으로 상소를 취하할지도 주목된다. 대법원은 이날 “구로동 분배농지 관련 사건 다수가 하급심에서 진행 중”이라며 “관련 사건에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대법원에는 구로 농지분배 사건의 피해자 후손 수백명이 몰렸다. 상고 기각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 일부는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