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로 다당제 퍼트렸다”… 대만인에 ‘징역 5년’ 선고한 중국

입력 2017-11-29 15:25
(사진=AP뉴시스) 대만 인권운동가 리밍저의 부인 리징위가 올해 9월11일 남편의 재판에 출석한 뒤 기자들 앞에서 문신을 새긴 두 팔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 그의 양쪽 팔뚝에는 “리밍저, 나는 당신이 자랑스럽다”라는 글이 적혀있다.

대만에서 다당제 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던 리밍저는 올 3월 마카오를 통해 중국 광둥성 주하이로 들어갔다가 간첩 혐의로 후난성 국가안전국에 체포됐다. 6개월여간 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던 그에게 중국 법원은 28일 최초로 ‘국가전복죄’를 적용해 징역 5년형을 선고하고 정치권리를 박탈했다.

중국 형법은 국가 전복을 유도하기 위한 조직, 계획, 실행을 한 주동자에게 최대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국가 전복에 적극 가담한 경우에는 3~10년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법원은 “리밍저가 사실을 고의로 왜곡해 중국 국가체제를 공격하고 적대감을 선동하는 등의 행위를 저질렀다”며 “이는 주관적인 악의와 사회적 위해성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리밍저가 법정에서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며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판결 후 리밍저의 부인 리징위는 성명을 통해 “이상을 추구하는 데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라며 “남편은 수감될 고통을 감당할 각오가 돼 있다. 더 이상 원망할 권리도 없다”며 항소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만 정부는 중국 법원의 판결에 “받아들일 수 없고 유감스럽다”며 “이 같은 사건 처리 방식에 대만과 중국의 사이가 큰 타격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또 “중국은 리밍저를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리밍저의 ‘죄목’은?


후난성 웨양 중급인민법원은 리밍저가 “중국 사회를 공격하며 다당체제를 부추겼다”며 죄목을 설명했다. 법원은 리밍저가 중국 사회운동가 펑위화와 손을 잡고 유명 메시지 플랫폼 ‘QQ’의 2000명이 있는 그룹 채팅방에서 이 같은 “사상”을 퍼뜨렸다고 말했다. 펑리화 역시 이날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리밍저는 이 같은 법원의 판결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이의 없다”며 “중국 정부를 공격하는 글을 썼고, 이를 유포했다”고 인정했다. 또 “다양한 SNS와 메신저를 통해 다당체제로 운영되는 민주주의를 홍보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리밍저의 가족과 동료들은 재판에서 “그가 중국 친구들과 함께 민주주의와 중국-대만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으나 운동가로서의 경험을 얘기했을 뿐, 나쁜 짓은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리밍저의 부인 리징위는 기자들 앞에서 “그가 법원에서 하는 말은 모두 강압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중국 정부가 자백을 받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징역 5년’ 선고가 불러올 파장은?



리밍저의 징역 5년 선고가 내려진 당일, 대만 총통 차이잉원은 즉각 그의 석방을 주문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퍼트리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며 리밍저의 선고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사건에 대만과 중국의 관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고 전한 대만 정부는 “대만 사람들이 추구해 온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이상을 향한 도전”이라고 꼬집었다.

독립을 지지하는 차이잉원이 권력을 쥔 1년 전부터, 대만과 중국의 관계는 악화되고 있었다. 중국은 대만이 중국에서 잠시 떨어져 나갔을 뿐이고 언젠가 본토에 흡수될 것이라 생각한다.

국제사면위원회도 목소리를 냈다. 국제사면위원회 연구원 윌리엄 니는 AFP에 “너무도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리밍저는 감옥에서 단 하루도 살 이유가 없다”며 “그가 했던 모든 일은 국제법에 따라 분명히 보호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연구원 패트릭 푼은 “리밍저의 사례는 대만 인권운동가들을 향한 경고일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일하는 모든 외국인들을 향한 경고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이 정의하는 ‘국가전복’이라는 개념은 매우 모호하다”며 “그와 비슷한 일을 하는 외국인들도 타깃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박세원 기자 sewon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