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습 끊은 왕자, 축복한 여왕… 메시지가 있는 로맨스

입력 2017-11-28 11:17 수정 2017-11-28 11:51
영국 왕손 해리 윈저(왼쪽)와 미국 여배우 매건 마클. AP뉴시스

미국 여배우 메건 마클(36)은 혼혈이다. 아버지는 네덜란드계 영국인, 어머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다소 어두운 피부색을 가졌다. 이 피부색을 이유로 어린 시절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이혼의 아픔도 가졌다. 미국 할리우드 프로듀서 트레버 엥겔슨과 2011년 결혼했지만 “넘어설 수 없는 성격 차이”를 이유로 2년 만에 헤어졌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입헌군주국의 왕가 중 상당수는 혼혈의 이혼자를 사위나 며느리로 허락하지 않는다.

영국 왕위 계승 서열 5위인 해리 윈저(33) 왕자는 혼혈의 이혼자인 메건에게 프러포즈했다. 더욱이 메건은 가톨릭 신자다. 영국 왕실은 국교인 성공회를 포함한 개신교 신자를 왕손의 배우자로 받아들이면서 가톨릭 신자를 배척했다. 영국에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가톨릭 신자와 결혼한 왕손의 왕위 계승 서열을 박탈하는 법이 있었다. 해리 왕자는 이런 구법과 관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해리 왕자와 메건을 연결한 매개는 자원봉사다. 메건은 드라마 촬영을 위해 체류 중인 캐나다 토론토에서 해리 왕자를 만났다. 지난해 5월 토론토에서 열린 상이군인 기부행사 ‘인빅터스’에서였다. 매클은 캐나다 월드비전 국제대사, 르완다 깨끗한 물 캠페인 홍보대사, 유엔 양성평등 캠페인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전몰자‧상이군과 그 가족을 지원하는 자원봉사도 전개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같은 활동을 전개하는 해리 왕자와의 만남은 그저 ‘운명’이 아니었다.

영국 왕손 해리 윈저(왼쪽)와 미국 여배우 매건 마클. AP뉴시스

어머니 도리안은 사회복지사, 아버지 톰은 에미상을 수상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할리우드 조명감독이었다. 메건은 부모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 모델로 데뷔해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유독 범죄물에 자주 등장한다. 미국 수사 드라마 ‘프린지’와 ‘CSI’ 시리즈에 출연했고, 지금은 법률 드라마 ‘슈츠’ 시리즈의 여주인공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메건 마크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해리 왕자와 메건은 지난해 11월 교제를 인정하고 공개 연애를 시작했다. 메건의 영국 왕실 접견은 지난 2월, 부모가 영국으로 찾아간 상견례는 지난 7월에 각각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혼은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여겨졌지만, 해리 왕자의 프러포즈 시기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영국 왕실은 27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해리 왕자와 메건이 이달 초에 약혼했고 내년 봄에 결혼한다”고 밝혔다. 해리 왕자는 찰스 왕세자의 차남이다. 어머니는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 다이애나 스펜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그의 할머니다. 여왕도 해리 왕자와 메건의 약혼을 축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신접살림은 영국 런던 켄싱턴궁 노팅엄 코디지에 꾸려진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