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낙태 실태조사 계획 등을 밝히며 낙태죄 처벌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지만 낙태는 현행법상 그 자체로 범죄 행위다. 1953년 제정된 형법 ‘낙태의 죄’ 규정은 부녀(婦女)의 자기 낙태, 의료업무 종사자의 낙태시술 등 모든 낙태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2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합헌 결정과 모자보건법에서 인공임신중절의 예외적 허용 사유를 규정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낙태=유죄’ 기조를 유지해 왔다.
대법원은 2012년 12월 “낙태죄 처벌 조항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임부(妊婦)의 낙태를 형사 처벌하는 것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이고도 적절한 방법”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임신 5개월이던 노래방 도우미의 의뢰를 받아 낙태시술을 했다가 업무상 촉탁낙태 혐의로 기소된 의사의 상고심 판결에서였다. 2심까지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의사는 낙태시술을 한 의사에게 벌금형 없이 징역형만 선고하도록 한 법 조항은 위헌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기각했다. 대법원은 “생명의 유지와 보호, 건강의 회복과 증진을 본분으로 하는 의사 등이 그에 반하는 낙태를 한 경우 일반인보다 책임이 무겁다”고 밝혔다.
형법 제269조 1항은 부녀가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고, 제270조 1항은 의사 한의사 조산사 등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한 때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64년 역사의 낙태죄 조항은 최근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평도 나오지만 실정법으로서 여전히 구속력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낙태죄로 기소된 이는 105명에 이른다. 연간 15명꼴이다. 지난해 1심 선고가 난 낙태죄 피고인 25명 중 2명이 실형, 13명은 집행유예가 나왔다. “여성의 낙태에 대한 자기결정권 또한 가볍게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죄는 인정되지만 선고는 미뤄주는 선고유예 판결도 7건 있었다.
법이 규정한 불가피한 사유가 아니고는 부모에게 낙태를 결정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판결도 있다. 2013년 5월 지적장애 1급 아이를 출산한 부모가 “태아에게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해서 출산했다”며 병원을 상대로 20년간 매월 100만원씩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지만 원고 패소가 확정됐다. 당시 법원은 “태아의 질환은 모자보건법상 인공임신중절 사유에 해당하지 않음이 명백하다”며 “부모는 아이의 지적장애를 알았다고 해도 적법하게 낙태할 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우생학적·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준강간으로 임신된 경우, 근친상간으로 임신된 경우, 임부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에 한해 임신 24주 이내의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청와대 답변과 관련, 27일 공개 질의서를 내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공임신중절에 대해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매우 교묘한 방법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며 강력 항의했다. 또 “가톨릭교회는 낙태 역시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유아 살해이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태아의 생명이 침해당할 수 없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