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낮시간, 유동인구·CCTV도 많은 상가건물서 범행 왜?
경찰 “정유라에만 꽂혀 시간·장소 신경 안써…조력자 없어”
마필관리사 몸싸움 중 흉기 찔리자 되려 놀라 “미안” 사과
일각선 “최순실 재판 불리한 증언에 앙심 품은 범행” 추정
경찰, 정치적 목적·배후 없는 것으로 판단…“원양어선 근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자택에 침입한 강도가 경찰에 붙잡혔지만 각종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범행을 저지르기 전 사전답사를 할 만큼 치밀하게 사전 준비를 한 것과는 달리 범행 과정은 전반적으로 허술해 다른 목적을 염두에 둔 의도된 ‘쇼’ 아니냐고 의심하는 시각이 많다.
우선 범행을 저지른 시점과 장소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다수 제기되고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이모(44·무직)씨는 지난 25일 오후 3시께 정씨의 서울 강남구 신사동 자택에 무장 상태로 침입해 흉기를 휘두른 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구대 경찰관에 붙잡혔다.
경찰은 이씨를 금품을 노린 단순 강도범으로 잠정 결론 냈지만, 빈집털이범이 아닌 이상 훤한 대낮에 흉기를 소지한 채 대범하게 강도 행각을 저지른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씨가 고른 범행 장소도 석연찮다. 정씨의 주거지는 7층짜리 건물로, 복층 구조로 돼 있는 6~7층에서 아들과 보모, 마필관리사와 함께 머물고 있다.
정씨가 주거하는 건물에는 상가 여러 개가 들어서 있어서 건물 내부 곳곳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 데다, 주말이면 평일보다 유동인구가 더 많은 점을 감안할 때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 범행을 저지를 만한 적절한 조건이 아니다.
이에 대해 강남서는 “이씨가 오로지 정유라에 꽂혔다”며 정씨를 목표로 한 범행이기 때문에 시간대와 장소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범행을 공모한 조력자도 없었다고 한다.
강남서 관계자는 “일반인들은 현금을 집에 안 놔두잖냐”며 “근데 정유라는 최순실 사건으로 인해 분명히 계좌가 추적당하고 그러니까 자기는 그 안에 다른 사람과 달리 돈 1~2억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지금 시점에서 정씨를 상대로 강도 범행을 저지른 배경도 의문을 낳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최순실씨 모녀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한 범행일 가능성도 있지만 반대로 최씨 재판에서 불리한 증언을 한 정씨에 대해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을 개연성도 없지 않다.
정씨가 어머니 최씨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서 핵심 증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도 범행의 배경으로 의심할 여지가 있다.
이씨가 정씨가 아닌 마필관리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것은 정씨에게 '언제든지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의도된 행동 아니냐는 것이다.
당장 27일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 증인으로 예정됐던 장시호씨는 이번 정씨 주거지 침입 사건을 의식, 신변 위협을 우려해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다만 경찰은 일단 이씨가 특정 정당에 가입하거나 집회에 참석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만큼 ‘정치색’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씨는 범행 당시 택배기사로 위장했으나 실제 직업은 무직이다. 경찰조사에서는 해기사 자격증이 있어 원양어선에서 10개월 간 선원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고 진술했다. 정치적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일각에서 특정 기업이나 세력을 배후로 의심하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경찰은 선을 긋고 있다.
강남서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전혀 배제를 하지는 않고 있다”면서도 “정치적 배후가 있으면 경찰을 그만 두겠다. 30년 근무했지만 팀장들이나 계장이나 저나 (피의자를) 보면서 그런 낌새는 못 차렸다”고 장담했다.
다만 경찰은 이씨가 누군가로부터 실제 살인을 청부받았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금융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통해 자금 흐름을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은 이씨가 카드 빚을 카드로 돌려막다가 약 2400만원의 채무를 진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마필관리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수법이 전문가의 소행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전문가의 소행이라기보다는 우연의 일치로 봐야 한다”며 “넘어지고 싸우는 과정에서 찔린 것”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이씨가 살해 의도로 흉기를 소지한 게 아니라 협박용으로 위협만 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마필관리사가 격투 과정에서 흉기에 찔린 순간 이씨가 “미안하다”고 갑작스런 사과를 한 이유도 흉기를 휘두를 의사가 없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씨의 아들을 의식해 “애가 볼까봐 칼도 숨겼다”고 경찰은 전했다.
강남서 관계자는 “이씨가 (마필관리사를) 해치려고까지는 안 했다. 그래서 찌른 다음에 ‘미안하다’고 한 거다”라며 “자기도 놀랬다고 한다. (흉기가 몸 안으로) 푹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놀랐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씨가 범행 당시 보모의 신분증을 요구하곤 어디론가 전화통화를 한 의혹에 대해선 경찰은 ‘쇼’ 라고 했다.
강남서 관계자는 “(이씨는) 신분증을 보면서 주민등록번호를 소리내서 읽고 누구한테 전화하는 척했다. 자기가 잘못되면 너네(최순실 측)도 해를 당한다는 액션을 보였다”며 “최순실쪽에 조직이 있어서 자기가 보복당할까봐 두려워 자기도 위력 과시를 위해 배후가 있다고 (연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