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도 권역외상센터 예산은 9%가량 줄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8년 예산안에 따르면 중증외상진료체계 구축 예산은 400억4000만원으로 올해 예산 438억600만원보다 39억2000만원(8.9%) 감소했다. 지난해에 비해 올해 예산이 7.8% 준 데 이어 외상센터의 예산은 2년째 삭감되고 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요구한 예산은 올해 예산보다 많았으나, 기획재정부가 이 예산을 삭감했다. 지난해 예산 중 101억5200만원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영주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장은 “2016년 외상센터 예산 중에서 다 쓰지 못한 불용 예산이 있어 삭감됐다”고 설명했다. 예산당국은 편성된 예산을 다 소진하지 못하면, 필요보다 많은 예산을 책정한 것으로 간주해 이후 예산을 삭감한다.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현실이 지적되는 가운데 센터가 편성된 예산의 4분의 1 가까이 쓰지 못한 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중증외상센터를 설치하겠다고 나선 병원이 적고, 외상외과를 지원하는 의사도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 수가가 보장되지 않는 체계도 문제다.
불용 예산 가운데 40억원은 지난해 진행되기로 했던 경남 권역 중증외상센터 선정이 무산됐기 때문에 발생했다. 정부는 전국 17개 중증외상센터 건립을 목표로 권역별 병원을 선정해 한 해 40억원, 총 80억원을 설립비로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예정됐던 경남 권역 선정이 무산돼 40억원을 쓰지 못했다. 경남 지역에서는 신청 병원이 한 곳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추가 공모를 실시한 결과 경상대학교병원에서 신청서를 제출했고 현재 선정 절차를 밟고 있다.
나머지 불용 예산 중 61억5200만원은 중증외상센터가 의사를 채용하지 못해 남은 비용이다. 정부는 중증외상센터 설립비와 별도로 전담 전문의 1명당 연간 최대 1억2000만원을 지원한다. 하지만 5명의 의사를 국비로 지원하면 병원은 1명을 자비로 충당해야 한다. 아주대병원 외상센터 역시 전담 의사 18명을 두고 있으나 12명만 국비 지원을 받고 있다. 간호사, 응급구조사 등에 대한 인건비 지원은 없다.
또 중증외상센터는 한 곳당 전담 전문의를 최소 20명을 둬야 하지만, 올해 상반기 대다수의 센터가 최소 인력에 미달했다. 울산대병원은 14명, 전남대병원·단국대병원은 11명, 을지대병원은 8명에 불과하다.
의사들이 외상센터를 기피하는 데에는 노동강도, 수가 체계 등의 이유가 있다. 중증외상센터의 의료진들은 사흘마다 12시간 야간 당직을 선다. 간호사들도 마찬가지인데, 이에 아주대병원 간호사 이직률은 35%에 달한다고 한다.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최근 외상외과 전문의 2명이 그만뒀다. 조현민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중앙일보에 “3일에 한 번꼴로 당직을 서면 생체리듬이 깨지고 체력이 뚝 떨어진다”며 “힘들어서 그만두면 남은 사람에게 과부하가 걸려 또 그만둔다”고 말했다. 그는 “사명감으로 시작해도 충분한 보상이 없으면 포기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외상센터의 수가 체계도 엉망이다. 이국종 교수는 “외상환자는 어디 다쳤는지 몰라 무조건 배를 연다. 출혈과 망가진 부위를 찾아 닦고 꿰맨다. 미세혈관·장간막(장 사이의 막) 등도 손대야 한다”며 “그런데도 정부가 한 군데의 치료 부위만 100%의 수가를, 다른 한 군데는 70%만 인정한다. 나머지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시술 부위가 일정 횟수를 넘어가면 의료 수가를 보장하지 않아 진료비를 삭감하는 체계다. 이렇게 삭감된 의료비는 병원이 책임진다.
이렇다 보니 의사도, 병원도 외상센터를 기피한다. 정부가 목표로 세우는 중증외상센터 17곳이 모두 문을 열면 외상전문의 391명이 필요한데, 2010~2016년 동안 외상외과 전문의는 228명밖에 배출되지 않았다.
이 같은 문제가 제기되자 보건복지부는 26일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시설과 인력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중증외상센터 기피 현상에 대해서는 전문의와 간호사에게 인력 운영비를 추가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수술 과정에서 진료비가 과도하게 삭감되지 않도록 수가 체계도 다듬는다.
복지부 정통령 보험급여과장은 “응급 시술은 별도 가산 수가를 매겨서 지원해주지만 충분히 보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권역외상센터 내 의료 행위를 유형별로 분석해 보험급여를 해줄 수 있는 시술과 약품은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쪽으로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박세원 기자 sewon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