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 팟캐스트 진행자인 김영호 의원은 다음 달 ‘거지특집’(가칭) 팟캐스트 방송을 준비 중이다. 후원금이 부족한 의원을 직접 방송에 출연시켜 후원금 모집을 호소하겠다는 계획이다.
김 의원은 26일 “지난해 팟캐스트를 통해 후원금 부족을 얘기했더니 며칠 만에 3000만원이 들어왔다”며 “그때 경험을 살려 일부 의원에게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올해 후원금 모금액은 4000만원, 후원금 통장 잔고는 100만원”이라며 “도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올해 정치후원금 모금 시한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모금 한도를 채우지 못한 국회의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올해는 대선이 있었기 때문에 후원금 한도가 평년의 배인 3억원이다. 의원들 입장에선 대목인 해다.
요즘 여의도 정가에는 “돈 좀 달라”며 직설적으로 후원금을 요청하는 정공법이 대세다. 지난해 ‘거지갑’으로 유명세를 탔던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대표주자다. 박 의원은 최근 자신을 ‘돈 달라는 남자’로 칭하며 “돈 좀 주세요”라는 동영상을 SNS에 올렸다. 게시 40시간 만에 2억2000여만원을 모금해 후원금 한도(3억원)를 채웠다.
민주당의 중앙당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이해찬 의원도 지난달 말 팟캐스트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현해 “당에 돈이 없다”며 “당대표인 추미애가 돈을 벌어오라고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민주당은 27일 추미애 대표와 김정우 비서실장, 홍익표 김경수 한정애 의원이 출연한 ‘더치페이(더불어민주당 치어업 페이)’ 동영상을 공개하고 올해부터 부활한 정당후원금 모금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의정활동 성과를 강조하며 후원금을 모집하려는 의원들도 다수다. 지역 조직기반이 취약한 초·재선 의원이나 비례대표 의원이 주로 선택하는 방법이다. 이재정 민주당 의원은 1년 반 동안 의정활동 소감과 국정감사 등 원내 활동성과를 담은 의정보고서를 온·오프라인에 배포하며 후원금을 요청할 계획이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지역구 기반도 없고 후원금 모으는 게 너무 힘들다”면서도 “뭔가 튀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기보다는 성과 중심으로 의원이 어떻게 노력해 왔는지 알리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당 권미혁 의원도 이번 국정감사 성과와 함께 “광장에 모였던 한 분 한 분의 마음을 생각하며 늘 그래왔듯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길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작성해 지지자들에게 보냈다.
의원들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올해 국회의원 재산신고에서 1억2000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황희 민주당 의원은 모금액 한도의 85%를 채웠다. 노무현정부 청와대 행정관 출신인 황 의원의 주요 후원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다. 별다른 모금 전략을 세우지 않아도 ‘노사모’(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같은 지지자 카페들이 나서 후원계좌를 홍보하며 모금활동을 벌인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 지지자 사이에 황 의원은 ‘가난한 친노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황 의원실 관계자는 “아무래도 재산이 많은 의원보다는 적은 의원에게 지지자들이 후원금을 내기 더 쉽지 않겠느냐”며 “의원 형편이 넉넉지 않은 것을 지지자들이 잘 알아 서로 나서서 홍보해준다”고 말했다.
반면 박정어학원 CEO 출신의 박정 의원은 지난 1∼5월 후원금 320만원 모금에 그쳤다. 1∼5월 후원금 모금 최하위 의원이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다 아는 것처럼 재산이 많은데 굳이 후원을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올해 3월 229억9298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후원금 부자 의원이 가난한 의원을 품앗이해주는 경우도 있다. 최근 후원금 쇄도로 ‘박주민 효과’를 확인한 일부 의원은 박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박 의원과 함께 홍보 동영상을 찍었다. 홍보 영상에서 박 의원은 “금수저 물고 태어난 줄 알았더니 돈 없다. 좀 도와 달라”고 읍소했고, 조응천 민주당 의원도 최근 후원금 모금 포스터에 박 의원을 찬조출연시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016년도 국회의원 후원회 후원금 모금액’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회의원의 후원금은 1438만원부터 3억4256만원까지 20배 넘는 차이를 보였다.
신재희 김판 기자 jshin@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