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6일 청와대 페이스북을 통해 직접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조 수석은 이날 9분여간의 영상을 통해 “이제는 태아 대 여성, 전면금지 대 전면허용 이런 식의 대립 구도 넘어서 사회적 논의 필요한 단계”라며 “임신중절 현황과 사유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를 벌이겠다”고 전했다.
다음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입장 전문.
오늘은 낙태죄 폐지에 관련된 청원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낙태죄 폐지 청원은 원치 않는 출산은 여성은 물론 태어나는 아이, 국가 모두에 비극으로 여성에게만 죄를 묻고 처벌하는 현행 낙태죄를 폐지해달라는 내용으로 지난 9월 30일 개시 이후 한달 만에 약 23만명의 추천을 받았다.
이 문제는 매우 예민한 주제다. 낙태라는 용어라는 자체가 부정적 함의를 담고 있다. 오늘은 모자보건법이 사용하고 있는 ‘임신중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겠다.
우리 형법이 제정된 1953년부터 임신중절 처벌된다. 임신중절 행한 여성은 물론 시술한 의사도 처벌된다. 그런데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된 후 아주 예외적 조건에 한해서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예컨대 부부가 우생학적으로 유전학적으로 장애가 있거나 흠결이 있는 경우, 강간이나 준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 등은 임신중절이 허용된다.
그동안 관련법 개정 논의가 없었던 것 아니다. 2000년 한국천주교 주교 회의에서는 예외적 허용 조항도 아예 삭제해서 임신중절을 완전 금지하자는 입법청원도 있었다.
2007년에는 정부가 낙태를 둘러싼 법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법 정비 방안을 연구하고 공청회 개최하여 사회적 논의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에는 낙태 예외 조항에 본인동의 사유와 사회경제적 사유를 추가하고 배우자의 동의조항과 우생학적 윤리적 사유를 삭제하는 것이 논의 됐다.
2012년에는 헌법 재판소가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렸다. 위헌 대 합헌이 4대 4로 팽팽했다. 결정문에는 찬반 진영 주장이 잘 담겨있다. 합헌 의견을 보면 사익인 임산부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크지 않고, 태아도 성장상태와 관계 없이 생명권의 주체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라고 하여 태아의 생명권을 강조했다. 반면 위헌 의견은 임신초기 자발적 임신중절까지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여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중 둘 중 하나만 택해야하는 제로섬으로는 논의를 진전시키기 어렵다. 둘 다 우리 사회가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 논의하기 위해서 임신중절이 실제로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 그 원인 무엇인지 살펴봐야한다. 안타깝게도 가장 최근 조사자료가 2010년 자료다. 추정 낙태건수는 16만9000건수지만 의료기관에서 행해진 합법적 임신중절은 6%에 불과하다.
실태자료조사에 따르면 미혼여성보다 기혼여성의 경우가 더 많다. 보건복지부가 2011년 별도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임신중절 사유는 ‘원치않아서’가 가장 많았다. ‘미혼이라서’ ‘사회경제적 이유가 있어서’ 등도 상당한 숫자였다.
임신중절을 줄이려는 당초 입법목적과 달리 불법 임신중절이 빈번이 발생하는 현실이다. 그런데 기소는 연 10여건 정도다. 처벌은 더욱 희소하다.
태아의 생명권은 매우 소중한 권리다. 임신중절 시술로 인해 생명권이 박탈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처벌강화 위주 정책으로 임신중절 음성화 야기, 불법시술 양산 및 고비용 수술비 부담, 해외원정 시술, 위험 시술 등의 부작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정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외에 불법 임신중절 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권, 여성의 건강권 침해 가능성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이제는 태아 대 여성, 전면금지 대 전면허용 이런 식의 대립 구도 넘어서 사회적 논의 필요한 단계다.
현재 OECD 35개국 중 본인 요청에 의해 인공임신중절 가능 국가는 25개국가다. 예외적으로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 혀용한 4개국까지 합치면 OECD 80%인 29개국에서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본인요청에 의해 임신중절이 가능한 경우에도 통상 12주 이내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7개국은 사전상담을 의무화하고 있다. 상담 후 시술까지 2~8일까지 숙려 기간을 두고 무분별한 시술을 방지하고 있다.
보건학자 김승섭 고려대 교수에 따르면, 2006년 세계보건기구연구를 인용해서 매년 전 세계에서 2000만명의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절 수술을 받고, 6만8000명이 사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를 생각하고 고민해보면 좋겠다. 첫째, 교제한 남성과 최종적으로 헤어진 후에 임신을 발견한 후 어떻게 하나. 둘째, 별거 또는 이혼 소송 상태에서 법적인 남편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하나. 셋째, 실직이나 투병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이 양육이 완전히 불가능한 상태에서 임신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하나. 이러한 세 가지 경우 현재 임신중절 하게 되면 그건 범죄다.
근래 프란체스코 교황은 임신중절에 대해 우리는 새로운 규정점을 찾아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번 청원 계기로 우리사회도 새로운 규정점 찾았으면 좋겠다. 이번 청원을 계기로 정부는 법제도 현황과 논점을 다시 살펴보게 됐다.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청와대 법무비서관실, 여성가족비서관실, 국민소통수석실 담당자가 세 차례에 거쳐서 쟁점을 검토하고 토론했다. 당장 2010년 이후 실시되지 않은 임신중절 실태조사부터 2018년에는 재개하기로 했다. 임신중절 현황과 사유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 그 결과를 토대로 관련 논의가 한 단계 진전될 거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한번 낙태죄 위헌법률 심판 사건이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공론의 장이 마련되고 사회적 법적 논의가 이뤄질 거라고 전망한다. 실제 법개정을 담당하는 입법부에서도 함께 고민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자연유산 유도약의 합법화 여부도 이런 사회적·법적 논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와 함께 정부 차원에서 임신중절 관련 보완 대책도 다양하게 추진하겠다. 먼저 청소년 피임 교육을 보다 체계화하고, 내년에 여성가족부 산하 건강가정 지원 센터 통해 가능한 곳부터 시범적으로 전문 상담을 실시하겠다. 이 과정에서 임신중절 관련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현장정보가 쌓여갈 거라고 기대한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이미 지시한 바처럼 비혼모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도 구체화될 전망이다. 적극적 경제적 지원을 모색하고 있다. 입양문화 활성화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상의 것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은 물론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비혼이건 경제적 취약층이건 모든 부모에게 출산이 기쁨이 되고 아이에게 축복되는 그런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국가의 의무와 역할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겠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