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상을 입고 귀순한 북한 병사의 수술을 집도한 이국종(48)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 교수의 호소와 20만명을 돌파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통했던 걸까. 보건의료당국이 이 교수가 소속된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시설과 인력지원을 더 확대하는 등 지원체계 전반을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복지부는 우선 전문의와 간호사가 열악한 환경과 처우 등을 이유로 권역외상센터를 기피하는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센터의 인력 운영비를 추가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지난 22일 브리핑을 통해 귀순 병사 수술과 치료 과정에서 불거진 인권 논란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밤낮으로 일하는 의료진의 인권도 지켜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또한 권역외상센터 내 각종 의료시술 과정에서 진료비가 과도하게 삭감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수가체계를 개선키로 했다.
이 교수는 지난 9월 아주대 교수회 소식지 ‘탁류청론’ 50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자신을 ‘적자의 원흉’ ‘죄인’이라고 표현하며 중증 외상외과 분야의 열악한 현실을 토로했었다. 그는 “나는 연간 10억 원의 적자를 만드는 원흉이 됐다”며 “얼음장 같은 시선들 사이에서 수시로 비참했다”고 힘겨운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복지부가 의료 행위나 약제에 대한 급여 기준을 정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일선 병원이 그 기준을 준수하는지 확인하고 이후 진료행위에 대한 의료비 증감이 이뤄진다. 이 교수는 이 과정에서 잦은 의료비 삭감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을 호소한 것이다.
이 교수는 “사경을 헤매는 환자들의 필수적인 치료를 줄일 수는 없었다”며 “난 날아드는 경고를 외면했고 어쩔 수 없이 모르는 척 치료를 강행하면 몇 개월 뒤 어김없이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으로부터 차가운 진료비 삭감 통지서가 날아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궁지로 내몰린 자신의 처지를 기억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또 “환자를 살리기 위해 약품과 장치들을 기준에 비해 초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함을 적어 심사평가원에 보냈지만 삭감진료비 회수율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며 “심사위원 중 외상외과를 전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 표준지침대로 치료했다는 내용의 자료를 수십 차례 제출해도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응급시술은 별도 가산 수가를 매겨서 지원해주지만 충분히 보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에 권역외상센터 내 의료행위를 유형별로 분석해 보험급여를 해줄 수 있는 시술과 약품은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쪽으로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또 닥터 헬기를 이용해 중증외상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의료행위에 대해서도 의료수가를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이 교수는 최근 “헬기 탈 사람이 없어 임신 6개월 간호사가 나간다”며 헬기 안에서 무수한 의료행위가 진행되지만 대가는 전무하다고 밝힌 바 있다.
복지부가 권역외상센터 지원 확대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예산 확보 등 현실의 벽은 높아 보인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8년도 중증외상진료체계 구축 예산은 400억4000만원으로 올해(439억6000만원)보다 39억2000만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권역외상센터 운영 예산은 339억4400만원으로 올해(338억6400만원)보다 8000만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예산정책처는 “본 사업의 목적은 시장 자체적으로 의료서비스가 이뤄지지 않는 의료분야에 대해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며 “의료서비스가 합리적으로 제공되기 위해서는 각 센터들의 정확한 운영수지를 파악해 지원규모를 정하는 게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지용 기자 jy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