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에 21중 추돌, KTX 서행… 더 위험한 건 ‘블랙아이스’

입력 2017-11-24 15:30
24일 오전 5시 45분께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선부고가도로에서 27중 추돌사고가 발생해 최모(56)씨 등 46명이 경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뉴시스

23일 밤부터 24일 오전까지 전국 곳곳에 눈이 내리고 일부 지역에서는 미처 녹지 않은 눈이 도로에 얼어붙으면서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경부선 일부 구간에서는 KTX 열차가 서행하기도 했다.

24일 오전 5시45분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의 선부고가교 내리막길에서는 쌓인 눈이 얼어붙는 바람에 차량들이 미끄러져 21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경상 10여명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주변 CCTV와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를 확보해 자세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오전 8시40분쯤 호남고속도로 광주 방향 익산IC 부근에서는 돼지 80여 마리를 실은 트럭이 눈길에 미끄러져 앞서가던 승용차를 추돌했다. 이 사고로 트럭이 넘어지면서 돼지 30여 마리가 고속도로로 쏟아져 나와 도로가 한동안 아수라장이 됐다. 신고를 받고 긴급 출동한 경찰과 소방당국은 돼지를 도로 밖으로 내모는 한편 넘어진 트럭에 있던 돼지 50여 마리를 다른 화물트럭에 옮겨 실었다.

앞서 오전 2시26분쯤에는 세종시 연기면 한 터널 입구에서 이모(56) 씨가 몰던 1t 화물차가 앞쪽에서 제설 작업을 하던 제설차량을 들이받고 이어 터널 입구 벽면에 부딪혔다. 이 사고로 이씨가 숨졌다.

코레일은 내린 눈으로 인한 안전사고에 대비해 이날 오전 7시부터 광명∼신탄진, 영동∼김천·구미 구간 등 일부 구간에서 KTX의 속도를 줄여 운행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빠른 열차 속도 때문에 철로에 언 얼음이 튀어 유리창이 깨지는 등의 사고가 발생할 것이 우려됐다”고 설명했다.


◇ ‘눈 쌓인 길’보다 더 위험한 ‘블랙아이스’


기상청은 이날 “출근 때 빙판길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눈이 쌓이지 않고 녹은 도로에도 매서운 ‘빙판길’ 조성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였다. “도로 위의 살인자”라고 불리는 ‘블랙아이스(Black Ice)’의 계절이 돌아왔다. 짓눈깨비라도 내리는 날은 특히, 눈이 오지 않는 날에도 운전자의 시선을 피해 아스팔트 위에 도사리는 이 살얼음을 경계해야 할 때다.

블랙아이스는 검은 아스팔트 위에 쌓인 아주 얇은 얼음막을 말한다. ‘블랙아이스’라는 명칭은 얼음이 투명할 정도로 얇아 검은 아스팔트가 비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많은 눈이 쌓이면 그만큼 운전을 조심하게 되지만, 블랙아이스는 언뜻 봐서는 인지하기 어려워 눈보다 사고 위험성이 크다.

블랙아이스가 위험한 건 눈이 오지 않는 날에도 생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철 땅 위에 있던 눈이나 얼음이 낮 동안 녹아 아스팔트 틈새로 스며들고,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면 녹았던 물기가 도로의 기름 및 먼지 등과 섞여 다시 얼게 된다.

지난 21일 오전 출근 시간대에 발생한 일산대교 14중 추돌 사고 역시 블랙아이스가 사고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포에서 일산 방향으로 주행하던 승용차가 3차로에서 급정차하며 뒤따르던 차들이 잇따라 추돌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출동한 소방 관계자는 “구조대원들도 미끄러져 넘어질 뻔 했을 정도로 도로 위 ‘블랙 아이스’ 현상이 심했다”고 했다.

22일 발생한 서울-양양 고속도로 13중 추돌 사고 역시 블랙아이스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 사고로 운전자 등 5명이 경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은 노면 블랙아이스에 차량이 미끄러지면서 연쇄 추돌이 일어난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피해 규모를 조사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아스팔트 표면 틈새에 눈이 스며든 상태에서 밤사이 급격히 기온이 내려가면, 도로 위에 블랙아이스가 형성된다”며 “아침 출근길에 특히 주의가 요구된다.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해 달라”고 당부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