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마지막으로 바다를…” 말기환자 위해 앰뷸런스 돌린 구급대원

입력 2017-11-24 14:32

응급환자 이송을 담당하는 구급대원의 사명은 가장 짧은 시간 안에 환자를 응급실로 옮기는 것이다. 그에게 ‘시간’은 곧 ‘생명’과 같은 말이다. 최근 호주의 한 구급대원은 이런 원칙을 정면으로 거슬렀다. 응급환자를 태우고 병원으로 내달리던 그는 고심 끝에 차를 돌렸다. 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도착한 곳은 바닷가였다.

호주 ‘퀸즈랜드 앰뷸런스 서비스’(QAS)는 22일(현지시간) 인터넷에 한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바닷가에 구급차용 이동식 침대가 세워져 있고, 그 곁을 QAS 소속 구급대원이 지키고 서 있는 장면이었다. 침대에는 이 대원이 이송하던 여성 환자가 누워 있었다. 대원은 환자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한동안 이 곳에 머물렀다.

침대에 누워 있던 여성은 말기 암환자였다. 집에서 요양하던 중에 상태가 악화돼 앰뷸런스를 요청했다. 의료진은 더 이상 손을 쓰기 어려워 집에 보냈고, 환자도 집에서 통증을 견디며 버티다 너무 힘겨워 구급차를 부른 터였다. 이번에 병원으로 실려가면 다시 나올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 출동한 대원은 매뉴얼대로 암환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한 뒤 그녀를 구급차에 싣고 내달렸다. 그런데, 병원으로 가는 길에 환자가 입을 열었다.

구급차에는 대원 2명이 타고 있었다. 환자는 그 중 한 명에게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평소 즐겨 찾던 하비 베이의 근처 바닷가 풍경을 병원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는 거였다. 두 대원은 그녀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 암이 많이 전이돼 있고, 그래서 퇴원한 것이었고, 이제 병원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할 수 있음을 아는 상황에서 매뉴얼에 얽매여 환자의 ’소원’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한다.

구급차는 방향을 돌렸다. 바닷가에 들르려면 먼 길을 돌아가야 하지만, 그 길을 택했다. 하비 베이 해변에 도착한 뒤 그녀가 침대에 누운 채 바다를 볼 수 있도록 해줬다. 그 곁에서 한참을 서 있던 대원은 환자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평화로워요. 모든 게 좋네요.”


구급대원과 침대에 누운 환자의 뒷모습이 담긴 이 사진은 해변 관리인이 찍은 거였다. 그는 낯선 광경을 보고 어리둥절했다가 사연을 알고 난 뒤 ’따뜻한 이야기’라는 생각에서 QAS에 제보했다. 이를 전해 들은 QAS는 “때로는 구급대원에게 약품이나 응급처치 숙련도보다 ‘공감 능력’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면서 제보받은 사진을 공개하며 두 대원에게 박수를 보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안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