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인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그의 작품들이 스크린에서 살아 움직인다. ‘러빙 빈센트’는 기획에서 제작까지 10년이 걸렸고 107명의 화가들이 어마어마한 분량의 그림을 직접 그려 완성한 세계 최초의 유화 애니메이션이다.
고흐가 그린 풍경화는 영화의 배경이 되고, 그가 그린 초상화는 주인공이 돼 살아 움직이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고흐 특유의 붓 터치와 화풍을 그대로 담아 고흐의 작품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는 고흐가 죽은 지 1년 지난 후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청년 아르망 룰랭이 고흐의 마지막 편지를 남동생 테오에게 전달하러 가는 가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여정에서 아르망은 조셉 룰랭, 닥터 가세, 마르그리트 가세 등 고흐가 그린 초상화의 주인공이자 평소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을 만나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추적한다.
고흐는 37년이란 짧은 생애 동안 한 점의 그림만을 판 불운하고 가난했던 화가였다. 하지만 후대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았고 미술사적으로는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아를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까마귀가 있는 밀밭’ 등 사람들 뇌리에 새겨진 그의 그림은 강렬한 색채와 노랗고 파란 거친 붓 터치의 향연이다.
영화의 색채도 인상주의에 영향을 받은 후기 화풍을 따르고 있다. 태양과 들판, 해바라기, 별빛을 그린 노란색과 물, 하늘빛을 담은 다양한 톤의 푸른빛은 고흐를 대표하는 색깔이다. 특히 ‘고흐의 노란색’이라 이름 붙여진 그의 노란색은 빛과 구원에 대한 강한 표현이기도 하다.
밤하늘이 어두울수록 별은 더욱 반짝인다. 비극적인 생 동안 불타오른 고흐의 예술혼도 그렇게 더욱 반짝인다. 파랑 노랑 녹색 빨강이 보여주는 색채 대조처럼 고흐의 삶은 사람들의 기억에 극적인 대조로 더 선명하게 남았을 것이다. 어둠의 교훈은 빛만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인간에게 값진 보물과도 같다. 고흐는 그 어둠의 교훈을 빛과 함께 가장 강렬하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화가다.
영광과 빛의 가치를 인간의 언어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신비한 하늘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 인간에게 생명과 빛의 교훈은 시지각적 대조를 통해서야 비로소 깨달아진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눅 15:11~24)에서 보듯, 모든 것을 잃고 궁핍해져서 돼지를 치고 돼지의 먹이인 쥐엄 열매로 주린 배를 채워 본 아들이 아버지와 집의 소중함을 가장 강렬하게 체험하는 법이다.
고흐는 생전에 남긴 편지에 ‘화가는 보이는 것에 너무 빠져있는 사람이어서, 살아가면서 다른 것을 잘 움켜쥐지 못한다는 말이 나를 슬프게 한다’고 썼다. 하지만 그가 정작 추구했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눈에 보이게 그려내는 것이었다. 강한 대조를 이루는 색채는 고흐의 눈에 비친 세계의 풍경 속 현실과 이상을 그대로 엿보이는 기법이다. 고흐처럼 자화상을 많이 남긴 ‘빛의 화가’ 렘브란트와 유사하게, 고흐는 색채를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빛의 의미를 부각하는 화가이다.
임세은<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