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MB)정부 시절 군과 국가정보원의 정치공작 수사 종착지로 다가가던 검찰이 ‘김관진(사진) 석방’이란 돌발 변수를 만났다. 이번 수사에서 구속됐던 피의자가 구속적부심사를 통해 풀려난 건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처음이다. 그의 석방을 본 측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도 23일 구속이 합당한지 다시 판단해달라며 구속적부심을 신청했다. 임 전 실장마저 풀려나면 군 정치·선거개입 수사는 주저앉게 될 수밖에 없다.
검찰의 한 간부는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직속부하까지 모두 구속영장이 발부됐는데 10여일 만에 다시 석방하는 게 말이 되나”고 토로했다.
지난해 전국 법원에 접수된 2406건의 구속적부심 중 367건 만이 인용 결정을 받았다. 15.2%의 좁은 문을 김 전 장관은 통과했다. 특히 교통사고, 사기 등 개인범죄 사범이 구속 이후 피해변제와 합의 등 사정변경으로 석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부패범죄나 국가적 법익 관련 피의자가 풀려나는 건 극히 드물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런 사건에서 적부심이 접수되는 사례도 적지만, 석방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며 “순수하게 법리적으로 판단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후 “김 전 장관 조사가 일단락돼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었다. 22일 밤 그가 구치소에서 나와 귀가하면서 다음 단계, 즉 MB 청와대의 공작 관여 부분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검찰은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을 조사한 뒤 최종적으로 이 전 대통령 직접 조사도 추진할 계획이었다.
김 전 장관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질 가능성이 높다. 구속적부심 결과는 항고할 수 없으며, 석방된 피의자가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하지 않는 한 기존 범죄사실을 갖고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할 수도 없다.
검찰은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다”는 법원의 판단에 동의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김 전 장관이 수사가 한창 진행되던 지난 8∼9월 임 전 실장, 연제욱 전 사이버사령관 등과 수차례 통화하는 등 말맞추기 정황이 뚜렷하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1부가 22일 석방을 명한 직후 검찰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낸 것도 공범 추가 수사 부분을 법원이 간과했다는 불만이 큰 때문이었다. 재판장인 신광렬 수석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부 최선임 법관이다. 신 부장판사는 24일 임 전 실장의 구속적부심도 심리한다.
김 전 장관 변호인단은 구속적부심에서 국가공무원인 김 전 장관은 군인·군무원을 대상으로 한 옛 군형법상 정치관여죄 처벌 대상이 될 수 없고, 사이버심리전을 지시했을 뿐 댓글 작성 등을 지시한 적은 없다는 논리를 댔다. 재판부는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이를 어느 정도 수용했다. 지난 11일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가 “주요 혐의인 정치관여가 소명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을 때와는 판단이 달라졌다.
수사팀은 시간을 두고 더 단단하게 혐의를 다져간다는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 전 장관 측이) 당장은 ‘우리가 이겼다’고 할 수 있지만 석방됐다고 수사가 끝난 건 아니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호일 양민철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