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수능 ‘세계지리 8번’ 수험생들 지금은?

입력 2017-11-24 07:15

4년 전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를 둘러싼 법적 다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답이 없던 사회탐구영역 세계지리 8번 문항을 푸느라 정신적 피해를 보았다며 일부 수험생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2018학년도 수능이 치러진 23일까지도 대법원에 계류된 채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2심까지는 추가합격 구제조치를 받은 42명에게 1000만원씩, 성적이 재산정된 52명에게 200만원씩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2013년 11월 7일 시행된 수능에서 세계지리 8번 문항은 세계 지도에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제시한 뒤 옳은 설명만으로 이뤄진 선택지가 무엇인지 물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07∼2011년의 평균을 들어 “EU의 총생산액이 NAFTA보다 많다”는 문항을 골라야 정답이라고 했다. 세계지도 아래에는 ‘2012년’이란 표기가 있었는데, 그해에는 NAFTA의 총생산액이 EU보다 컸다. 정답률은 49.89%였다. 평가원은 “정답에 이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일부 수험생이 행정소송을 제기, 1년이 지나서야 오류가 인정됐다.

서울행정법원은 “평균 수준의 수험생은 정답을 선택할 수 있었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2심인 서울고법은 2014년 “명시적으로 지시되지 않은 출제자의 의도를 추론해 이 문제를 풀 수는 없다” “이 문제의 정답은 없는 것이어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없다”고 판단을 뒤집었다. 평가원은 수험생의 성적을 다시 따졌고 교육부는 추가 합격 조치를 했다.


문항을 둘러싼 논란 외에도 수능을 둘러싼 법적 다툼은 다양하다. 시험감독관의 잘못된 안내로 시계 없이 시험을 치른 한 수험생은 국가로부터 500만원을 배상받았다. 2016학년도 수능일 전북 전주의 한 여고에 있던 시험감독관은 “잔여시간이 ‘카운트’되는 시계는 반입이 안 된다”고 말했다. “스톱워치 기능이 있는 시계는 반입이 안 된다”고 말해야 했지만,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잘못 안내한 것이었다.

이에 한 수험생은 많은 수험생이 소지했던 일명 ‘수능시계’를 제출해 버렸다. 시험실에는 별도로 비치된 시계가 없었다. 전주지법은 지난해 10월 “수능은 1년에 한 번 실시되는데, 시간 안배를 하기 힘들어 상당한 불안감과 심적 고통을 얻었을 것”이라며 배상을 결정했다.

아파트 신축현장을 지나다 굴삭기가 건드린 버킷(굴삭기용 삽)이 몸 위로 넘어지는 바람에 골절상을 입은 경기고 3학년 학생은 소송 끝에 치료비 외의 위자료까지 지급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인문계 고3 학생이 수능을 2개월여 앞두고 부상을 입어 입원치료를 받은 경우”라며 “위자료를 증액할 사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수능 성적이 나빴다며 과외교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학부모도 있다. 과외교사는 “나는 서울대를 나왔고 친구가 수능 출제위원인데, 과외를 맡기면 수능 1주일 전에 예상문제집을 가져다주겠다”고 장담했다. 학부모는 “알고 보니 과외교사가 서울대를 다닌 적이 없고 수능 출제위원도 알지 못하며, 예상문제집도 주지 않아 딸이 수리영역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부산지법은 이 과외교사가 받은 과외비 620만원을 모두 반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다만 정신적 피해 위자료 1000만원을 청구한 데 대해서는 “딸이 수리영역에서 원하는 점수를 얻지 못한 게 과외교사의 잘못만은 아니다”며 100만원으로 깎아 지급토록 했다.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