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 색띠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바다'…김이수 개인전

입력 2017-11-23 19:41
전시장에 들어서면 보이는 건 얼핏 바다다. 사진 같기도 하고 회화 같기도 한 바다 이미지들이 변주돼 있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바다라고 착각했을 뿐 실체 없는 단색조의 이미지일 뿐이다.
전시장 전경.

서울 삼청동 도로시살롱에서 열리고 있는 서양화가 김이수 작가의 개인전 ‘앵프라맹스-랜드스케이프’는 풍경화의 흥미로운 변주를 보여준다. 점점 옅어지다 어느 지점에서 경계를 긋듯 색이 짙어지는 수평선. 색의 그러데이션은 아주 미세한데, 그게 회화 페인팅이 아니라는 데 놀라게 된다. 작가는 반투명 접착테이프에 아크릴 물감을 칠한 후 이 색 테이프를 켜켜이 붙이는 방식으로 화면에 색을 표현한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작품 활동하면서부터 붓을 직접 쓰지 않고 매개를 통해 색을 표현하는 방법을 썼다”며 “간접적인 방식으로 뭔가를 표현하는 걸 즐겼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앵프라맹스-랜드스케이프 2017>, 아크릴 판에 아크릴 물감과 접착 테이프. 작가 제공

처음엔 아크릴판 2개를 붙이고 그 안에 색실을 넣어 회화적 효과를 냈던 일명 ‘구조회화’에서 출발했다. 이후 종이를 두껍게 쌓으면서 그 쌓은 각도가 만들어내는 ‘추상적 풍경’을 했다. 이 ‘색띠 회화’ 작업은 3년 전부터 해오고 있다. 과거 작품과 비교하면 단색화를 연상시키듯 신작에선 색의 절제가 있다.
“처음엔 구체적인 바다를 떠올리며 작업했지요. 색도 강했고요. 그러다 지난해부턴 형상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특정 바다를 그린 게 아니라는 거지요.”

작가는 “바다라기보다는 바다에 대한 기억을 그린다는 게 맞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본 기억을 그린다는 얘기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 세잔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이 아니라 현상 너머의 본질을 그리고자 하는 태도일 것이다.

전시 제목 ‘앵프라맹스(Inframince)'는 프랑스의 현대미술가 마르셀 뒤샹이 처음 사용한 미학 개념에서 따왔다. 프랑스어에서 ‘낮은’ ‘아래의’ ‘다음의’를 뜻하는 접두사 ‘infra’와 ‘얇다’‘가늘다’를 뜻하는 형용사 ‘mince’를 합친 것으로, 두 현상 사이의 매우 미묘한 차이, 사이 등을 뜻한다. 미묘한 차이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바다’를 보는 것 같다.

작가는 성신여대에서 서양화과를 전공하고,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서 공부했다. 전시는 26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