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모비스 포워드 전준범 하면 많은 농구 팬들은 2014년 12월 17일 열린 서울 SK전을 떠올린다.
당시 현대모비스는 종료 5초를 남기고 3점차로 앞서고 있었다. 유재학 감독은 선수들에게 골밑은 괜찮으니 외곽슛 수비만 열심히 하라고 지시했다. SK의 마지막 공격에서 김민수의 3점슛이 빗나가며 현대모비스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는 듯 했다.
그런데 SK 애런 헤인즈가 리바운드한 공을 골밑슛으로 연결시켰고, 바로 옆에 있던 전준범이 쓸데없는 파울을 범해 바스켓카운트를 줘버렸다. 당연히 유 감독은 전준범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다행이 헤인즈의 자유투가 림을 통과하지 못해 전준범은 지옥에서 살아났다.
그리고 1년 뒤 똑같은 날 서울 삼성과의 대결에선 1점차로 앞선 상황에서 전준범이 경기 종료 2초를 남기고 장민국에게 파울을 범했다. 장민국은 자유투를 모두 성공시켰고, 현대모비스는 결국 역전패를 당했다. 유 감독이 분노한 것은 당연지사. 유 감독은 “매년 12월 17일 경기마다 사고를 친 전준범의 등번호가 공교롭게도 17번”이라며 매년 12월 17일을 ‘전준범 데이’로 부르자고 쓴 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렇듯 전준범은 좋은 슈터지만 경기 때 집중력이 떨어지는 선수였다. 고교시절 최고 슈터로 연세대에 진학했지만 대학에서 훈련을 게을리 하고 경기 집중력도 없어 2013년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9순위로 현대모비스의 부름을 받았다.
유 감독은 전준범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유 감독은 “전준범이 슛 만큼은 타고난 선수인데 근성이 부족하다. 훈련을 할 때도 집중력이 떨어지기 일쑤”라고 했다. 그래서 집중력을 키워주기 위해 다른 선수들보다 더 혹독하게 대했다.
그런 유 감독의 조련이 빛을 발했다. 전준범은 23일 뉴질랜드 웰링턴의 TSB 뱅크 아레나에서 열린 뉴질랜드와의 2019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예선 1라운드 A조 1차전에서 3점슛 6개를 포함해 22점을 쓸어 담았다.
덕분에 허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86대 80으로 승리했다. 전준범은 절정의 슛 감각을 뽐냈다. 3점슛 8개를 시도해 6개를 넣어 성공률 75%를 기록했다. 특히 77-75로 불안하게 앞선 4쿼터 종료 1분7초를 남기고 3점슛을 꽂아 넣으며 팀 승리의 수훈갑이 됐다. ‘만수’의 애물단지가 ‘허재호’의 황태자가 된 것이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전준범이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하고 공격과 수비에서 열심히 해줬다”면서 “대회를 마치고 팀에서도 이런 상승세가 계속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준범의 활약으로 허재호는 FIBA 월드컵 본선을 향한 가벼운 첫 걸음을 시작했다. 한국은 FIBA 랭킹 34위로 중국(24위), 뉴질랜드(27위), 홍콩(82위)과 한 조에 속했다. 26일 고양체육관에서 중국과 지역예선 2차전을 벌인다.
한편 FIBA는 이번 월드컵부터 지역예선 제도를 도입했다. 대륙별로 자체 예선을 펼친다. 아시아·오세아니아 대륙에는 총 7장의 본선 티켓이 걸려있다. 한국은 1998년 그리스 대회 이후 본선에 가지 못하다가 2014년 본선에 진출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