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계야, 9시간만 참아다오”… 수능 1교시 시작, 애타는 학부모

입력 2017-11-23 08:43

지진 때문에 일주일 연기된 수능이 22일 오전 8시40분 전국 85개 시험지구 1180개 시험장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1교시 언어영역은 오전 10시까지 80분간 진행된다. 오전 8시10분 입실이 완료돼 수험생이 모두 시험장에 들어간 뒤에도 학부모들은 시험장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잔뜩 긴장했을 자녀들을 걱정하고, 또 9시간 동안 이어지는 시험 중에 지진이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곳곳에서 기도와 기원을 했다.

경북 포항의 시험장 12곳에 특별히 설치된 지진계는 1교시 시작 때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전날 밤 10시15분41초에 포항 북구에서 발생한 규모 2.0의 여진이 마지막이었다. 최근 며칠 동안 새벽 시간에 규모 2~3 수준의 간헐적 진동을 보이곤 했지만 이날은 아직 조용한 상태다.

◇ “아직은 별 일 없는데…” 긴장한 포항


“괜찮아. 오늘은 괜찮을 거야. 시험 중에 지진 나진 않을 거야.” 시험장이 마련된 포항해양과학고 앞에서 한 학부모는 이렇게 말하며 자녀를 들여보냈다. 다행히 전날 밤 10시15분쯤 규모 2.0에 진도 1의 약한 여진이 발생한 뒤론 잠잠한 상태였다. 수험생 김모(19)군은 “이번 지진 대처가 잘 된 것 같다”며 “일주일 더 준비할 수 있었고, 시험 중 여진만 없으면 잘 치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포항의 12곳 시험장에는 오전 6시30분을 전후해 수능 문답지가 도착했다. 진앙과 가까운 북쪽 4곳의 고사장은 남쪽 학교 4곳으로 대체된 상태다. 시험 시작 전 강한 여진이 발생했을 경우에 대비해 경북 영천 등의 예비고사장으로 수험생을 이동시킬 버스 244대도 준비돼 있었다. 포항의 수험생은 6098명이다. 시험장마다 소방·경찰 등 안전요원도 13명씩 배치됐다. 소방관 4명, 경찰관 2명, 건축구조 기술자 2명, 전문 상담사 1명, 의사 1명, 수송 담당자 3명 등이다.

일찍 시험장에 도착한 학부모들은 교문 앞에서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자녀들이 지진 공포를 딛고 무사히 시험을 치르기를 기원했다. 한 학부모는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수능이 끝났으면 좋겠다. 시험 치는 아이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내색은 못 하지만 애보다 내가 더 긴장되는 것 같다"고 심경을 표현했다.

경북도 수능 상황본부가 마련된 포항교육지원청은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수능 시간 중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여진 가능성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수능 관리에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상황본부 측은 전날 밤부터 예상 시나리오별 매뉴얼을 일일이 재점검하는 한편 평가원 종합상황실 등과의 핫라인도 거듭 확인했다.

강한 여진 발생 등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이날 포항교육지원청에 비상 대기한다. 류희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도 포항에 머물며 김 부총리의 안전분야 대응을 지원한다.


◇ 시험 중 지진 땐 ‘3단계 대응’

시험 도중 지진이 발생하면 3단계 매뉴얼에 따라 대처하게 된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은 지진 규모가 아니라 사람들이 체감하는 정도를 뜻하는 ‘진도’다. 진동이 느껴지나 경미한 1단계 상황에선 중단 없이 시험을 계속 진행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크게 동요하거나 학교 건물 상황에 따라 대피가 필요하면 시험을 일시 중단하고 대피할 수 있다.

진동이 느껴지지만 안전을 위협받지 않는 수준인 2단계에선 시험을 일시 중지한 뒤 책상 아래로 대피한다. 안전에 더 이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될 때 시험을 재개한다. 행동요령은 ‘시험 일시 중지 → 답안지 뒤집기 → 책상 아래 대피' 순으로 이뤄진다. 상황이 급박한 경우 답안지 뒤집기는 생략된다. 유리창 파손 등 피해 상황이 상당할 경우 시험 재개 없이 대피할 수 있다.

진동이 크고 실질적인 피해가 우려되는 3단계 상황이 발생하면 2단계와 마찬가지로 일단 책상 아래로 피했다가 운동장으로 대피한다. 고사장 책임자는 지진 발생 시 기상청 비상근무자로부터 대처 단계를 통보받아 교실 밖 대피 또는 시험 재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시험 재개가 결정되면 10분 안팎의 안정 시간을 고려해 재개 시각을 정하고, 방송으로 시험 재개와 시각을 안내한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