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지진’으로 연기된 수능이 실시되는 23일 경북 포항 곳곳에 설치된 지진계는 입실 완료 시간인 오전 8시10분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전날 밤 10시15분41초에 포항 북구에서 발생한 규모 2.0의 여진이 마지막이었다. 최근 며칠 동안 새벽 시간에 규모 2~3 수준의 간헐적 진동을 보이곤 했지만 이날은 아직 조용한 상태다.
22일 밤 10시15분에 발생한 여진의 진앙은 포항 북구 북쪽 9㎞ 지역이었다. 진원 깊이는 8㎞로 얕았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진도를 보였다. 기상청은 “지난 15일 발생했던 규모 5.4 포항 본진의 여진”이라고 설명했다. 포항 여진은 지금까지 총 63차례 발생했다. 규모 2.0~3.0 미만이 57회, 3.0~4.0 미만이 5회, 규모 4.0~5.0 미만이 1회였다.
22일 밤 대만에서는 큰 지진이 있었다. 오후 11시20분 대만 화롄 서남서쪽 93㎞ 지역에서 규모 5.5 지진이 발생했다. 깊이는 지하 19㎞였다. 기상청은 “이 지진의 영향이 한반도에까지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포항, 수능 입실 상황
포항의 12곳 시험장에는 오전 6시30분을 전후해 수능 문답지가 도착했다. 진앙과 가까운 북쪽 4곳의 고사장은 남쪽 학교 4곳으로 대체된 상태다. 만약 시험 시작 전 강한 여진이 발생하면 포항 수험생들은 경북 영천 등 다른 지역에 마련된 예비고사장으로 이동해 시험을 치른다. 수험생 비상 수송용 버스 244대가 준비됐다.
포항의 수험생은 6098명이다. 시험장마다 지진계가 설치돼 있다. 소방·경찰 등 안전요원도 13명씩 배치됐다. 소방관 4명, 경찰관 2명, 건축구조 기술자 2명, 전문 상담사 1명, 의사 1명, 수송 담당자 3명 등이다.
일찍 시험장에 도착한 학부모들은 교문 앞에서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자녀들이 지진 공포를 딛고 무사히 시험을 치르기를 기원했다. 한 학부모는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수능이 끝났으면 좋겠다. 시험 치는 아이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내색은 못 하지만 애보다 내가 더 긴장되는 것 같다"고 심경을 표현했다.
경북도 수능 상황본부가 마련된 포항교육지원청은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수능 시간 중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여진 가능성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수능 관리에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상황본부 측은 전날 밤부터 예상 시나리오별 매뉴얼을 일일이 재점검하는 한편 평가원 종합상황실 등과의 핫라인도 거듭 확인했다.
강한 여진 발생 등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이날 포항교육지원청에 비상 대기한다. 류희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도 포항에 머물며 김 부총리의 안전분야 대응을 지원한다.
◇ 지진 대피 판단 기준은 ‘규모’ 아닌 ‘진도’
시험 도중 지진이 발생하면 3단계 매뉴얼에 따라 대처하게 된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은 지진 규모가 아니라 사람들이 체감하는 정도를 뜻하는 ‘진도’다. 진동이 느껴지나 경미한 1단계 상황에선 중단 없이 시험을 계속 진행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크게 동요하거나 학교 건물 상황에 따라 대피가 필요하면 시험을 일시 중단하고 대피할 수 있다.
진동이 느껴지지만 안전을 위협받지 않는 수준인 2단계에선 시험을 일시 중지한 뒤 책상 아래로 대피한다. 안전에 더 이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될 때 시험을 재개한다. 행동요령은 ‘시험 일시 중지 → 답안지 뒤집기 → 책상 아래 대피' 순으로 이뤄진다. 상황이 급박한 경우 답안지 뒤집기는 생략된다. 유리창 파손 등 피해 상황이 상당할 경우 시험 재개 없이 대피할 수 있다.
진동이 크고 실질적인 피해가 우려되는 3단계 상황이 발생하면 2단계와 마찬가지로 일단 책상 아래로 피했다가 운동장으로 대피한다. 고사장 책임자는 지진 발생 시 기상청 비상근무자로부터 대처 단계를 통보받아 교실 밖 대피 또는 시험 재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시험 재개가 결정되면 10분 안팎의 안정 시간을 고려해 재개 시각을 정하고, 방송으로 시험 재개와 시각을 안내한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