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가 뇌종양 투병 끝에 55세로 타계했다.
러시아 타스통신 등 외신은 22일(현지시간) 흐보로스토프스키의 유족이 페이스북에 띄운 사망 소식을 잇따라 타전했다. 유족은 “흐보로스토프스키는 뇌종양으로 2년 반 동안 싸우다가 22일 오전 영국 런던의 자택 인근 병원에서 가족들이 함께 한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라며 “그의 따뜻한 목소리와 그의 정신력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의 에이전트도 타스통신에 사망 소식을 확인했다.
1962년 시베리아에 있는 도시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성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테너로 시작했지만 점차 바리톤으로 자리잡았다. 1985년 크라스노야르스크 오페라하우스에서 베르디의 ‘리골레토’ 단역으로 데뷔한 그는 1989년 영국 카디프 BBC 성악 콩쿠르에서 웨일스 출신의 1위 후보 브린 터펠을 제치고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됐다. 이어 유럽과 미국의 주요 오페라극장 무대에도 성공적으로 데뷔하면서 명성을 얻게 됐다. 한국에는 1997년 첫 내한공연을 시작으로 4차례 방문한 바 있다.
그는 오페라 무대에서 강렬한 에너지와 시적인 감수성을 고루 갖춘 가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도도한 러시아 귀족을 연상시키는 눈부신 은발의 외모 또한 매력적이어서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토머스 햄슨, 브린 터펠과 더불어 ‘세계 3대 바리톤’으로 꼽혀온 그는 콘서트 무대에서는 러시아 오페라 아리아와 가곡 등 러시아 레퍼토리를 즐겨 불렀다. 팬들은 긴 이름 때문에 그를 ‘디마’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는 지난 2015년 6월 뇌종양 진단을 받으면서 세계 음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치료에 집중했던 그는 지난 5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50주년 기념 갈라 콘서트에 등장하며 재기를 알렸다. 다소 창백했지만 격정적인 그의 노래에 링컨센터를 채운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상태가 다시 악화된 듯 지난 6월 오스트리아 그라페네크 페스티벌에서 열린 ‘드미트리와 친구들’을 끝으로 공식 활동을 중단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플로렌스와의 사이에 14살된 아들과 10살 된 딸이 있다. 전처 사이에도 21살의 쌍둥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