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귀순한 북한 병사를 집도한 이국종 아주대 교수가 중증외상 의료계의 현실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귀순병의 치료 과정을 공개한 것이 ‘인권 침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의사 입장에서 봤을 때 환자의 인권을 가장 지키는 중요한 방법은 ‘목숨을 구하는 일’”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22일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열린 2차 브리핑에서 환자의 상태를 밝히기에 앞서 장시간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이런 상황까지 온 것에 굉장히 자괴감이 든다”며 “외과 의사들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전문화된 일에 특화된 사람이다. 말이 말을 낳고, 말의 잔치가 되어버리는 복잡한 상황을 헤쳐나갈 힘이 없다”고 털어놨다. 이날 브리핑 역시 병원장이 취소하라고 지시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거듭 ‘자괴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정말 괴롭다”고도 했다. 이 교수는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에는 귀순병 외에도 150명의 환자가 더 있다며 “여기 오기 30분 전부터 아주대 중증외상센터는 더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 귀순병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돌아가시는 환자들을 보려고 한국에 온 건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저는 정책을 만들지 않는다. 말단 노동자일 뿐이기에 정책의 도구로서 위에서 만들어주는 데까지만 일할 수 있다”며 “국민의 혈세를 투입한 중증외상센터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에 대해 창피할 때가 많다. 대한민국에서 중증외상센터는 지속가능한 미래가 없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현실에서 마지막까지 버티는 게 저희 팀원”이라고 작심 비판했다.
의료진들의 고충도 전했다. 이 교수는 “에이즈 환자를 사전에 검사 없이 수술한 적도 있다. 출동하면서 어깨가 부러진 적이 있고 간호사가 수술 중 유산한 적도 있다. 우리 의료진은 헬기 타고 출동하면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의 인권침해를 말하기 전에 중증외상센터 직원들도 인권 사각지대에서 일하고 있다”며 “언론인들이 (의료진들의 그런) 진정성을 다뤄주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 교수의 발언은 1차 브리핑 이후 불거진 ‘환자 인권침해’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지난 15일 브리핑에서 귀순 병사에게 기생충이 발견됐다는 내용 등을 밝혔다. 그러자 일각에서 “환자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비난이 나왔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기생충과 분변, 위장의 옥수수까지 공개돼 병사의 인격에 테러를 당했다”는 글을 올렸다. 환자를 이용해 ‘쇼’를 한다거나 다른 환자를 두고 귀순병의 수술에만 집중한다는 비난도 이어졌다.
이날 이 교수는 의료 현장의 어려움을 보여주기 위해 ‘아덴만 영웅’ 석해균 선장의 수술 과정을 담은 프레젠테이션(PPT)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는 석 선장에게 수술 과정을 공개하는 것을 허락 받았다며 “의료진은 환자의 인권인 생명 앞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변과 피가 튀기는 수술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귀순병 수술 당시 피로 물든 바닥을 보여주며 “북한군 청년은 2차례에 걸친 수술 과정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피 1만2000CC 이상을 수혈받아가며 온몸의 피를 순환했다”고 설명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