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무가베(93) 짐바브웨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사퇴를 발표했다. 의회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 도중에 의장에게 편지를 보내 이를 알렸다. 37년 장기 독재는 드디어 막을 내렸다. 수도 하라레 등 도시마다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독재 종식’에 환호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쁨이 얼마나 이어질지 의문을 던지는 이들이 많다. 무가베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취임할 것으로 알려진 에머슨 음난가그와(75) 전 부통령이 무가베 못지 않은 권력욕과 폭압성을 나타내왔기 때문이다. 그는 ‘악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빈틈없고 무자비하며 효과적으로 권력을 행사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 ‘악어’가 조종한 쿠데타?
무가베 퇴진을 이끈 군부 쿠데타의 배후에 음난가그와가 있다는 관측은 이미 정설이 됐다. 무가베 대통령이 그를 해임하자 곧바로 쿠데타가 발생했다. 음난가그와는 짐바브웨 군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오래 전부터 군 지지기반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온 터였다. 쿠데타를 이끈 콘스탄틴 치웽거 사령관 역시 음난가그와와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외신들은 집권여당인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동맹 애국전선'(ZANU-PF)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이 23일 대통령에 정식 취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무가베에 의해 경질된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내온 음난가그와는 21일 밤 귀국해 권력 이양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음난가그와는 수십년간 무가베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려왔다. 무가베의 정책을 주도하고 집행해온 장본인이다. 1980년 짐바브웨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부터 줄곧 정부 ‘2인자’였다. 내년 대선에서 유력한 차기 주자로 꼽혔지만 무가베의 부인 그레이스가 권력 계승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뒤 갈등을 빚어 왔고, 지난 6일 무가베 대통령에 의해 전격 경질됐다.
짐바브웨 주재 미국 대사관은 2000년 국무부에 보낸 문건에서 “음난가그와가 무가베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잡으면 더 폭압적인 리더가 될 것이란 두려움이 짐바브웨에 팽배해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영국 케이트 호이 하원의원 역시 최근 의회에서 “짐바브웨에서 무가베보다 더 엄청난 테러를 초래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음난가그와”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 음난가그와, 누구인가
짐바브웨 사람들은 집권당 ZANU-PF의 음난가그와 계파를 일컬어 ‘라코스테(Lacoste)’라고 부른다. 음난가그와의 ‘악어’란 별명에서 착안해 악어를 로고로 사용하는 의류 브랜드 라코스테를 그의 계파에 별명으로 붙인 것이다. ‘팀 라코스테’란 표현이 주로 사용된다.
음난가그와에게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은 그의 ‘치밀함’ 때문이고, 그런 특성은 ‘정보’를 장악했기에 가능했다. 음난가그와는 1980년대 짐바브웨 내전 당시 국가 정보 당국의 지휘를 맡았다. 수천명이 목숨을 잃은 내전에서 모든 정보를 총괄하면서도 그 학살의 책임은 모두 피해가는 ‘영리함’을 보였다. 음난가그와는 이후 짐바브웨 군부와 정보기관과 여당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해왔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