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산부인과들이 출산율 저하로 인한 새 수입원 창출을 위해 필러(보충제)를 이용한 여성의 질 성형 시술에 나서고 있다. 기존 성기능 향상 시술보다 간편하고 빠른 시일 내 회복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내세워 불법 광고까지 하고 있다. 필러 시술은 출산과정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지만 법적 기준이 모호해 마땅한 제재수단도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현재 얼굴 안면부의 주름 개선 목적으로만 필러 사용을 허가하고 있다. 다른 목적의 사용에 대해선 안전성 검사가 실시되지 않았다. 얼굴 성형 외 사용은 원칙적으로 금지된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산부인과는 공개적으로 질 성형 시술에 필러를 사용하고 있다. 허가된 목적 외에도 ‘의료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사용이 가능하다는 규정 때문이다. 얼굴 성형 목적으로 판매가 허가된 필러를 병원이 구입한 뒤 의사가 생식기 성형시술에도 필요하다고 판단해 사용하면 합법이 되는 구조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그러나 “필러를 허가목적 외의 용도에 사용하는 것이 의료법 위반은 아니지만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의 사이에는 여성 생식기에 이물질을 주입할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이물질로 인해 유착이 생길 수 있고, 골반 장기에 천공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출산 등으로 출혈이 생기면 필러가 골반 내 혈관으로 흘러 들어가 폐동맥색전증을 유발해 산모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폐동맥색전증은 호흡곤란을 일으켜 심하면 짧게는 수시간, 길게는 수일 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
손인숙 건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이런 시술은 여성의 건강에게 전혀 좋을 게 없다”며 “필러는 보통 대사 작용으로 체내에서 사라지지만 잔여물이 남을 경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근육운동이나 케겔 운동 등으로 성기능을 강화시킬 수 있으므로 시술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용범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맹장수술이나 암 치료 등이 여성의 임신·분만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임상연구는 많이 있었지만 필러 시술의 경우 그런 연구가 이뤄진 바가 없다”며 “연구 자체가 없기 때문에 여성의 건강에 해를 끼치는지 여부를 단정적으로 말할 근거도 없으며 적어도 10년은 그 영향을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필러를 이용한 질 성형 시술이 버젓이 자행되면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관련 광고도 범람하고 있다. 산부인과마다 경쟁적으로 필러 시술 능력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병원 내에서 이뤄지는 팸플릿, 포스터 등의 광고를 제외한 온라인 광고는 불법이다.
복지부와 식약처는 지난해 불법 광고를 한 의료기관 76건을 적발했는데 이 중 여성 생식기 필러 광고가 11건, 유방 필러 광고가 1건이었다. 식약처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에 이를 알려 광고를 차단하고, 지방자치단체에 주의공문을 내려 영업정지 등 시정조치를 지시했다. 대한의사협회에도 공문을 보내 불법 광고를 주의해달라고 당부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학문적 근거가 없는 시술행위를 광고하는 것은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라며 “시술 자체는 환자 특성별로 의사의 판단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광고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글=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일러스트=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