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테러지원국 지정을 빌미로 어떤 식으로든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추가 제재와 북한의 고강도 도발이 맞물리면서 한반도 정세가 다시 ‘도발·제재’의 악순환에 접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북한은 테러지원국 지정을 자국에 대한 적대적 태도로 여겨 왔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3월 “우리에게 테러지원국 딱지를 붙이려는 것은 우리에 대한 체질적인 거부감과 적대적 태도의 표현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이며 이것이 철회되지 않는 한 대화에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으로선 미국의 이번 조치로 도발 명분을 얻은 셈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21일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건 미·중 정상회의에서 도출된 북핵 관련 제안을 북한이 거부했다는 의미”라며 “북·미, 북·중 대화 모두 성과가 없었다는 것으로 당분간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최대한의 제재로 북한을 몰아붙이고,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완성을 내세워 미국을 압박할 것이란 얘기다. 국가정보원은 전날 국회 정보위원회에 “북한이 연내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북한이 도발 수위를 조절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미 본토를 겨냥한 ICBM 시험발사나 7차 핵실험은 한반도 위기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격화시킬 수 있어 북한으로서도 부담이 적지 않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도발한다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테러지원국 지정은 북한도 예상했던 조치이고 상징적 압박의 의미가 크다”며 “단기적으로 한반도 정세가 출렁거리겠지만 그 여파가 길게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외교부는 정례브리핑에서 테러지원국 지정에 영향을 미친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해 “분명한 테러 행위”라고 밝혔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1주일 전 브리핑에선 ‘김정남 피살 사건을 테러로 보느냐’는 질문에 “테러지원국 지정 요건으로 평가할지에 대해선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즉답을 피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