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 아이다, 어려서부터 걷기 시작하면서 바로 뛰어 다닐 만큼 활동적인 아이였다. 학교에 가서도 공부 시간에 딴 짓을 하거나 장난을 쳐 지적받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 선생님에게 대들기도 하고,학교 규칙을 어기고,화가 나면 참지 못해 친구들과 다툼도 잦았다. 견디다 못한 P의 부모는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왔다.
P의 충동성이나 집중력의 문제, 지나친 활동성, 선생님과의 관계, 친구와의 다툼 등은 약물치료와 행동 수정 등을 통해 몰라보게 달라졌다. 서너 시간 걸리던 숙제를 이십분이면 끝냈다. 성격이 차분해져 지적 받는 일도 없고 화가 나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었다. 또 해야 할 일을 계획해 수행할 정도여서 시간이 지나면서 말썽꾸러기에서 ‘모범생’으로 변신했다.
그런데 커다란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소소한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부모도 그 전에는 “학교서 싸움만 하지 않아도 좋겠다”고 하였지만 차츰 욕심이 났다. 글씨도 좀 예쁘게 가지런히 썼으면 좋겠는데 삐뚤빼뚤하고, 크기 까지 오락가락하니 알아 보기 힘들었다. 연필을 잡는 모양도 어색하고 너무 힘이 들어가 안쓰러워 보였다. 아무렇게나 써서 그런 줄 알고 야단도 치고 반복해서 다시 써보게도 하였지만 나아지질 않았다.
P와 같이 미세 소근육 발달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대개 손 사용을 싫어한다. 그림 그리기도 썩 좋아하지 않고, 물건을 쥐거나 옮길 때 실수를 많이 하고, 단추 끼우기나 운동화 끈 매기가 어렵워 한다. 엄마가 대신 해주기 쉽다. 선천적으로 부족한 ‘손의 기능’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기능이 더욱 떨어져 자신감마저 잃기 쉽다.
이런 아이들은 실수를 하고 속도가 느리더라도 어릴 때 숟가락질부터 옷 입고 벗기 등을 스스로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손 소근육의 발달은 ‘몸 전체를 조절하는 기능’과 연관되기 때문에 신체적인 놀이도 많이 해야 한다. 닭싸움, 사방치기, 미끄럼타기, 그네타기, 썰매밀어주기 등 바깥에서 즐기는 놀이가 도움이 된다. 신체 전체를 조절하는 이런 운동들을 하면서 차츰 작은 근육을 사용하는 가위질, 젓가락으로 콩 집어 옮기기, 종이접기, 한손으로 동전 세기 등을 놀이를 통해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P 와 같은 초등학생에게도 글씨 쓰기가 생각보다 여러 기능이 복합적으로 잘 협응되어야 해 쉽지 않다. 야단쳐서 될 일이 아니다. 하나씩 차근 차근 연습해야 한다. 손가락의 위치, 왼손의 위치, 자세 등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들을 배워가야 한다.
먼저 엄지와 검지의 정확한 위치에서 감싸주고 중지로 받치도록 가르친다. 처음엔 글씨를 쓰기보다 간단한 도형이나 그림을 그리며 연필운용을 연습하고 그 다음 한 글자씩 연습한다. 자신의 손가락의 힘주는 정도를 관찰하고 어떤 글씨를 어떤 요령으로 힘주는 것이 도움이 되는지 스스로 관찰하고 방법을 터득하게 해야 한다.
칭찬은 필수! 차츰 큰 글씨에서 작은 글씨 순으로 연습한다. 스스로 변화를 느끼고 재미를 느껴야 지속 할 수 있다. 특히 예쁜 글씨로 숙제를 하라든가, 일기를 다시 쓰라는 말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공부에 조차 동기,의욕이 떨어지고 거부감을 가질 수 있고 글씨 연습에도 방해가 된다. 공부는 공부대로 그냥 편안해 하고, 글씨 연습은 따로 조금씩 하면 된다.
아이가 차츰차츰 변해가는 걸 느낄 수 있겠지만 이런 활동만으로 발전이 너무 더디거나 미세 소근육의 발달 지연이 생활 전반에 어려움을 초래한다면, 손과 눈의 협응 능력, 손 기능검사, 실행기능 검사 등 전문가의 평가와 치료가 필요 할 수 있다. 어릴수록 치료가 잘 된다.
이호분(연세 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