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병원 폭행 피해자 전공의 A씨(33)는 의료계에서 영원히 왕따가 될까봐 두려워했다. 폭행 피해 사실을 알리고 병원을 나온 지 9개월이 됐지만 전공의 수련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회의적이라고 토로했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내부고발자가 설 자리는 비좁았다(국민일보 11월 20일자 11면 참조).
A씨는 견디다 못해 폭행 사실을 털어놨다고 했다. 그는 20일 국민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병원을 나오기 전인 지난 1월 정형외과 교수님에게 ‘맞아서 힘들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했다. 선배 전공의의 폭언과 폭행은 지난해 11월부터 계속됐다. 회진을 마치면 회의실로 불려가 어깨와 다리 등을 맞았다. 선배 전공의도 한때 ‘폭력은 훈육이 될 수 없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던 병원 내 폭력의 피해자였지만 1년여 만에 가해자로 변했다.
망설임 끝에 같은 과 교수를 찾았지만 돌아온 건 타박이었다. A씨는 “(저에게) 가해자의 폭언 내용을 녹취한 파일이 있었는데, 폭행 얘기를 꺼내자마자 교수님은 ‘왜 녹취를 했느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고 주장했다. 다른 교수를 찾아갔지만 도움은 되지 않았다. “어쭙잖게 알리려다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조금만 참아봐라”는 게 돌아온 조언이었다.
A씨는 “피해 사실을 알린 뒤, 왜 맞았을 때 병원에 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는데 전주시내 정형외과 의사는 대부분 전북대병원 출신”이라며 “당시만 해도 병원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맞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A씨는 지난 2월 병원을 떠났다. 어디든 갈 데가 없겠느냐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9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나머지 전공의 수련을 받는 것을 거의 포기한 상태다. A씨가 폭행당한 사실을 언론에 폭로한 뒤 전공의로 받아주려던 병원들이 A씨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강원도에 머물다가 지금은 광주에서 일반의로 일하고 있다. 교수들의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전북대병원 측은 그러나 여전히 A씨 사건을 몰랐던 일로 치부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A씨가 사적으로 친한 교수에게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식적으로 정형외과 교수님들 중 A씨의 문제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A씨가 병원에 있을 때 문제제기를 했다면 진지하게 논의했을 것”이라며 “병원 입장에서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건이 보도되자 병원 측은 지난달 말 A씨에게 사과하겠다고 나섰다. 대신 A씨가 병원까지 와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A씨의 부인은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하니 너무 당황스러웠다”며 “병원 밖 카페에서 만나자고 제안했지만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 불가하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결국 병원 측과 A씨의 만남은 불발됐다.
병원 측은 “A씨와 얘기를 나눠야 할 부분이 있어 제안했고, 공식적 내용인 만큼 병원에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A씨에게 폭언을 했다고 인정한 선배 전공의에 대해서는 정직 1개월 처분 징계가 내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나머지 2명은 검찰 조사가 끝나면 징계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