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무겁기만 해야?…日 ‘장애인 개그맨’ 코믹 사진집

입력 2017-11-21 05:01
사진=아소 독 트위터

일본 인기 여배우 이시하라 사토미는 지난 8월 사진집을 냈다. 사진집은 2주도 안 돼 발행부수가 11만부를 넘길 만큼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시하라의 사진집이 발매되기 며칠 전, 한 개그맨의 사진집이 조용히 세상에 나왔다. 게다가 가격은 이시하라의 것보다 비쌌다. 타이밍도, 가격도 이시하라의 사진집을 향한 도전인 셈이었다. 아사히신문의 인터넷 매체 위드뉴스는 지난 14일 자칭 세계 최초의 ‘와병 개그맨’ 아소 독(본명 아소 이치·38)의 이야기를 전했다.

◇얼굴과 왼손 엄지 외엔 움직일 수 없는


사진집의 주인공 아소 독은 어릴 적 전신 근육이 수축되는 ‘척수성 근위축증’ 진단 받았다. 이 때문에 얼굴과 왼손 엄지 말고는 움직일 수 없다. 대부분의 시간을 휠체어 위에서 보낸다.

그는 장애인인 동시에 개그맨이다. 아소 독은 와병 생활을 소재로 참신한 개그와 콩트를 영상으로 내보내며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공영 방송 NHK의 ‘바리바라’에서도 활약 중이다.

아소 독 사진집의 사진은 유명 작가는 오치 타카오(38)가 찍었다. 의족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절단 비너스’로 화제가 된 바 있는 오치씨는 패럴림픽 선수에 매료돼 장애인 촬영을 주로 해왔다.

두 사람이 합작해 아소 독 ‘수면집(寝た集, sleeping collection)’이 탄생했다. 둘은 반 년간, 총 30일에 걸쳐 촬영을 했다. 도쿄, 카나가와, 이시카와, 오사카, 후쿠오카, 오이타, 구마모토 7개 현을 돌았다. 아소 독은 바디페인팅을 하거나 여장을 했고, 끔찍한 뱀을 머리에 올려두기도 했다.

사진=위드뉴스 웹사이트 캡처

◇이걸 보고 웃어도 될까?


장애인과 개그맨. 다소 낯선 조합을 처음 접하는 이들은 대부분 당황해 한다. 더군다나 여기에 코믹한 사진까지 더해지면 더욱 난감해진다. ‘함부로 웃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드는 탓이다.

하지만 아소 독은 웃기기 위해 사진집을 만들었다. 그는 “촬영 주제는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책’을 만드는 것”이라며 “개그맨의 사진집이니 어쨌든 웃기게 만들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복지색’을 빼는 것에 유의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복지색의 배제’는 장애인을 향한 고정관념을 전제한다. 아소 독은 “나는 개그맨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보단 웃게 하고 싶다”며 “핸디캡을 극복한 장애인과 같은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것들을 배제시켰다”고 말했다.

사진집 표지에는 구릿빛으로 온몸을 칠한 채 모래에 묻혀 있는 아소 독이 있다. 그는 “이건 시조새”라며 “내 몸의 형상과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진을 찍은 곳은 모래사장이 아닌 집이다. 320㎏짜리 모래를 구매한 뒤 블루시트에 깔고 그 위에서 촬영했다. 아소 독은 “바깥에서 적당히 모래를 뿌린 뒤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오치씨가 ‘밖에서 장애인을 모래로 메우면 신고 당한다’고 걱정해서 집에서 찍었다”고 말했다.

사진=위드뉴스 웹사이트 캡처

◇카메라에 담기는 장애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오치씨는 사진 촬영을 하면서 ‘장애’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됐다. 오치씨가 장애인을 사진에 담기 시작한 건 2000년 시드니 패럴림픽 때부터다. 그는 “개회식에서 놀랐다”며 “선수들은 당당하게 웃는 얼굴로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었고, 다리가 없는 선수도 한 손으로 걸으면서 다른 한 손은 흔들며 인사했다”고 말했다.

실제 경기는 더 놀라웠다. 박력 넘치는 휠체어 농구, 100m를 10초대로 달리는 의족 선수들을 보며 그는 “인간이 이렇게 대단하구나 생각했다”며 “이 놀라운 경험이 나 자신이 만든 고정관념을 허물었고, 동시에 세계를 바라보는 눈도 넓어졌다”고 말했다.

이 계기로 그는 장애인들의 사진을 찍게 됐다. 대표적인 것이 의족을 단 여성들을 대상으로 ‘절단 비너스’다. 그는 “이 여성들에게 의족은 ‘안경’처럼 실용적인 패션의 일부”라며 “사진이라는 매체로 그걸 표현하는 사진을 찍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위드뉴스 웹사이트 캡처

오치씨와 아소 독은 2011년 만났다. 오치씨는 허리를 다쳐 걷는 것조차 힘들 때 TV에서 아소 독의 콩트를 보며 팬이 됐다. 그는 “(아소 독은) 와병 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꿔줬다”며 “불편한 몸으로 웃음을 주는 그가 장애인 운동선수와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소씨를 장애인으로만 보는 건 안타깝다”며 “그의 웃음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치씨는 반년을 함께한 아소 독에 대해 “단순한 변태”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그는 “재밌는 것을 추구하는 자세가 대단하다. 흥미로운 것은 뭐든지 해보려고 한다”며 “300㎏의 모래를 나르고, 혼자 집에 방치되거나, 여장을 하려고 정강이 털을 면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어느 곳에선 ‘연예인’ 코너에, 어느 곳에선 ‘예술’ 코너에


최근 일본에선 ‘감동 포르노’라는 말이 있다. ‘핸디캡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약자’의 모습만 소비하는 미디어를 야유하는 말이다. 하지만 장애인이라고 해서 이런 하나의 단면만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장애인 중에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으며, 얌전한 사람, 재미있는 사람, 성욕이 있는 사람, 자기 이익을 중시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이들이 있다.

아소 독의 사진은 밝고 코믹하며 때로는 묵직하다. 이를 통해 ‘장애인의 사진’이라고 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고정관념을 깬다. 그는 “그렇게 멋진 건 아닐지 몰라도 아무튼 재미있는 것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아소 독 수면집’은 어느 서점에선 ‘연예인’ 코너에, 또 다른 서점에선 ‘예술’ 코너에 배치돼있다. 아소 독에겐 이 또한 개그 소재였다. 그는 “사진집을 여러 곳에 두고 본다”는 아이디어를 내서 수면집에 해시태그(#)를 붙여서(#寝た集) 트위터에 올렸다. 이를 본 팬들은 나무 위나 전자레인지 등에 아소 독의 사진집을 놓고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며 호응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