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발생한 포항 강진의 충격파가 가시지 않은 가운데 전국적으로 지진대피소 운영이 열악하다는 재난 전문가의 지적이 나왔다.
주민 대다수가 피할 수 있도록 대피소를 확보하고, '대피소 운영 매뉴얼'을 만들어 재난 발생시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조치가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뉴시스가 20일 입수한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배천직(48) 행정학 박사의 '재난현장 대응 및 대피소 운영 능력 강화 방안: 일본의 자주방재조직과 대피소 운영 사례를 중심으로' 연구논문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지정된 지진대피소(옥외·실내) 수는 총 7068곳이다.
이들 대피소의 총면적(7632만4100㎡)을 바탕으로 살펴본 국민 1인당 지진대피소 면적은 1.5㎡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당 확보된 지진대피소 공간이 1평(3.3㎡)의 절반도 되지 않는 것이다.
배 박사는 "각국 현황이 천차만별이긴 하나 UN 난민기구의 겨울철 난민 발생시 대피소 1명당 최소 보장 공간은 4.5㎡(약 1.4평)"라며 "현재 국내에서 대형 지진이 발생할 경우 많은 이재민이 대피소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각 시도별로는 이번 지진 피해를 본 경북 지역의 한 사람당 지진대피소 공간이 6.7㎡로 2평을 넘겨 그나마 나은 상황이었다.
대구와 울산의 1인당 공간은 2.5㎡로 경북 뒤를 이었지만 역시 1평을 넘기지 못했다.
한 명당 공간이 1㎡에 미치지 않는 지역은 총 7곳이었고 이 중에서도 가장 좁은 지역은 서울, 대전, 충북으로 각 0.4㎡였다. 만일 이들 지역에 대형 지진이 발생할 경우 1평이 갓 넘는 공간에 10명의 이재민이 피해야 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겨울에 피할 수 있는 학교시설, 마을회관, 경로당 등 지진 실내구호소만 보면 우리나라 국민이 1인당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은 0.1㎡에 그쳤다. 전국 지진 실내구호소 수는 지난해 말 기준 1536곳이다.
지난해 경주지진 이후 지진대피소가 다소 확충되긴 했으나 양적인 면이나 질적인 운영 능력 면에서 모두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 박사는 "포항 지진으로 이재민들이 겪는 불편을 보면 실태가 여실히 드러난다"며 "대피소를 지자체에서 지정한다고 해도 운영 매뉴얼이 없는 등 재난이 발생한 뒤 활용 대책이 미흡하다"고 꼬집었다.
실제 포항 지진 현장에서는 이재민들의 불편이 커지는 모습이다. 추운 날씨에도 마땅한 임시 거처가 빠르게 확보되지 못하고 대피소 운영도 미흡해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논문은 일본의 대피소 운영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도 지진과 같은 재난 발생시 대응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재해대책 기본법을 개정해 '대피소에서의 양호한 생활환경 확보를 위한 대응 지침'을 마련하고 대피소 운영을 위한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
주민 대다수가 피할 수 있도록 대피소를 지정하고, 지역 내 지정대피소가 부족하면 여관, 호텔, 기업의 사옥 일부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사전 협정을 체결해 준비한다.
일본은 또 대피소 운영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대피소 운영 지침(매뉴얼)'도 만들어 운영 중이다. 대피소에서는 식량 배급, 대피자 관리 및 상담, 물자 조달, 봉사 등 역할이 배정되며 평상시에도 재해시 역할을 맡을 관련자들에 대해 연수나 모의훈련을 진행한다.
아울러 환경변화에 취약한 노약자, 장애우 등 배려자를 위한 복지대피소도 지정해 운영한다. 이곳에서는 배려자 10명당 1명의 직원을 배치하도록 한다.
논문은 "대피소 운영 매뉴얼을 만들어 이재민들이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며 "이런 환경들이 조성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뒷받침도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2015년부터 진행돼 지역자율방재단에서 교육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지역자율방재단은 자연재해대책법 제66조에 근거해 지역주민이 예방·대비·대응·복구에 참여하는 민간 자율 방재조직이다. 배 박사는 포항 지진 이후 발생한 문제점에 관해 추가 연구를 진행 중이다.
배 박사는 연구 배경에 대해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과 현장 대응 능력이 열악한 부분에 문제점을 느끼고 지속해왔다"며 "포항 지진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추가 연구해 내달 학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배 박사는 내달 15~17일 충남 보령시, 세종시, 충북 청주시에서 열리는 제11차 국제위기관리학술대회(ICCEM)에서 이번 연구를 보완한 최종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매년 미국, 일본, 중국 등 국내외 재난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학술대회다.
그는 "재난은 돌발적인 대규모 사태라는 면에서 일상적인 소규모 사고들과 구별되고 예측 불가능하다"며 "미리 재난 발생 이후를 대비하지 않으면 향후에도 이재민들이 고통을 겪는 모습이 똑같이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