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주연배우로 두각을 나타내셨는데….” 질문이 나오기가 무섭게 배우 이동휘(32)는 멋쩍음을 참지 못하고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두각이 아직 전혀 보이지 않는데(웃음).” 타고난 센스와 유머감은 좀처럼 감춰질 줄 몰랐다.
겸손함이 무색하게 이동휘의 첫 스크린 주연작 ‘부라더’(감독 장유정)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19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2일 개봉한 이 영화는 18일 만에 누적 관객 수 142만명을 기록했다. 손익분기점(100만명)을 가뿐하게 넘어선 수치다.
영화는 경북 안동의 뼈대 있는 집안에서 자란 형제(마동석 이동휘)가 벌이는 좌충우돌 코미디. 극 중 이동휘는 잘 나가는 건설 회사에 다니다 치명적인 실수로 실직 위기에 처한 동생 주봉 역을 맡았다. 작정하고 웃기지는 않는다. 무심하게 툭툭 내뱉는 대사들에서 자연스레 웃음이 터질 뿐이다.
최근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동휘는 “주어진 상황은 웃기지만 배역을 연기하는 태도는 절실해야 했다. 그래야 형제 사이가 왜 그렇게 소원해졌는지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더불어 웃음도 드려야 하지 않았나. 진정성과 재미를 함께 추구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애드리브가 절묘하게 녹아 들어간 장면이 적지 않다. 마동석을 향해 “옆으로 누웠을 때 머리가 땅에 안 닿는 사람은 처음 본다”거나 이불을 뒤집어 쓴 상태로 자기 몸 위에 올려진 마동석의 팔을 두고 “다리를 치우라”고 하는 웃음 포인트들이 모두 그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감독님과 의견을 많이 나눴어요. 그렇게 준비를 철저히 했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현장의 기적’이 생기더라고요. 마동석 형을 보고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말들을 한 거예요. 그렇게 재미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어쨌든 마동석 선배님이 석봉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죠. 모든 영광은 선배님께 돌리고 싶습니다(웃음).”
감초 역할에서 벗어나 당당히 극의 전체 흐름을 이끈 첫 영화다. 이동휘는 “예전에는 제 분량 자체가 적었고 촬영 중간에 투입되는 경우도 많았다”면서 “이번에 긴 호흡으로 연기를 해보니 나무보다는 숲이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주변을 둘러보는 책임감도 생긴 것 같다.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인 이동휘는 포기 않고 배우의 길을 걸었다. “1학년 첫 공연 때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어요. 객석에 계시던 부모님이 계속 저만 보시더라고요. 아들이 뭘 한다는 것에 행복해하신 거죠. 그 모습을 보며 ‘이걸 업으로 삼아 효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졸업 이후 오래 일이 없으니까 그만두라고 하셔서…, 반전이었죠(웃음).”
이동휘는 “같이 프로필을 돌리러 다니던 많은 사람들이 포기를 했다. 다들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면서 “하지만 나는 그게 딱 하나 남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외롭게 고집을 피운 것이 다행히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대중이 그를 주목하게 된 계기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6·이하 ‘응팔’)이었다. 바라만 봐도 유쾌해지는 동룡 캐릭터가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큰 사랑을 받은 작품과 캐릭터를 만났다는 게 배우로서 얼마나 큰 행운인가 싶어요. 감사한 마음이 앞서죠. 보답할 수 있는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서 이동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응팔’을 능가할 만한 인생작을 선보일) 기회가 생기리라 믿는다”고 했다. “차근차근 잘 준비를 해나가야죠. 그런 작품을 다시 만나긴 힘들겠지만, 아예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입견과 달리 이동휘는 그리 ‘웃긴’ 사람이 아니다. 꽤나 낯을 가리고, 매우 사려 깊으며, 대부분의 순간에 진중하다. 그런 그로써는 코믹한 이미지가 내심 부담스러울 법도 하다. 정극 연기에 대한 욕심도 적지 않을 테다. 하지만 “개인적인 욕심을 부리기보다 작품 전체를 위한 선택을 하고 싶다”는 게 그의 말이다.
지난해 출연한 단막극 ‘드라마 스페셜-빨간 선생님’(KBS2)은 향후 작품 활동에 있어 유의미한 분기점이 됐다. “빨간 선생님 이후 시나리오의 힘에 더 집중하게 됐다”는 이동휘는 “작품이 재미있다면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전했다.
“좋은 시나리오를 고르려다 보니 아무래도 작품 편수가 줄어들더라고요. 앞으로도 이런 호흡으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기간에 인정받기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평가를 받은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일희일비하지 않고 항상 반성하고 용기를 얻으며 연기해야 될 것 같아요.”
본인에 대한 믿음이 강한 편이냐는 말에 이동휘는 “남들이 잘 안 믿어주니까”라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는 “축구스타 네이마르가 한 경기에 네다섯 골을 넣어 승부를 뒤집은 뒤 인터뷰한 걸 봤다. ‘다들 질 거라고 했지만 나는 나 자신을 믿었다’고. 정말 멋지더라. 자신을 믿기 위해선 그만한 노력과 실력이 동반돼야 하지 않나.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동휘가 지향하는 모습은 확고하다. 나이 들어서도 변함없이 치열하게 고민하는 배우. “종종 선배님들 인터뷰를 보면 ‘아직도 연기를 모르겠다’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말씀을 하시잖아요. 그게 잘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야 조금씩 알겠더라고요. 그런 어려움을 뚫고 내놓은 결과물이 더욱 값진 것 아닐까요. 계속 어려워하고 고민해야 하는구나 싶어요.”
그렇지만 걱정은 없다. 변요한 류준열 지수 수호(엑소) 등 든든한 동료들과 동행할 테니. “다 같이 멀리 바라본다는 공감대가 있거든요. 코앞의 성공과 실패에 기뻐하거나 낙담하는 게 아니라 ‘아직 가야할 길이 멀구나’ 다잡는 편이죠. 서로 중심을 잡아주는 좋은 동료들을 만나 행복해요. 서로 궁금해 하고 있어요. 나이 들어서 우리가 과연 어떤 배우가 될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