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을 죽이고 시신을 내다버린 범인은 법정에서 선처를 호소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꼭 용서를 구하고 갚으며 살겠다”는 그에게 판사는 “피해자는 사망했는데 어떻게 용서를 구하냐”고 반문했다.
17일 오전 여중생 살인 및 시체 유기 사건 첫 공판이 열린 서울북부지법 702호 법정에 이른바 어금니아빠 이영학(35·구속)씨는 녹색 긴팔 수의 차림으로 들어섰다. 형사합의11부 이성호 부장판사는 이씨가 제출한 장문의 답변서를 확인했다. ‘피해자에 용서를 구하고 꼭 갚으며 살겠다’ ‘희망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무기 징역만 피하게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씨는 “앞으로 1분1초라도 목표 없이 살고 싶지 않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답변서에는 또 “내가 왜 이랬는지 모르겠다. A양은 사망한 부인이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의 딸이었다”고도 썼다. 이씨 변호인은 재판부에 “그가 범행 당시 향정신성의약품 과다 복용으로 환각·망상 증세가 있어 심신미약 상태였다”며 “살해는 우발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부장판사는 “(피해자가)사망해서 용서를 구할 수 없는데 용서를 구하겠다고 썼는데, 갚으며 살겠다는 건 어떻게 갚느냐”고 일축했다. “공소장에 기술된 사실은 인정하느냐? 벌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이씨에게 질문하면서 “(사실관계는)심리를 통해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씨는 딸의 친구 A양(14)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추행한 뒤 살해하고 강원도 영월 인근 산에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씨는 법정에서 고개를 푹 숙이거나 흐느꼈다. 검찰이 그의 딸 이모(14·구속)양을 증인으로 신청하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자 이씨는 “어흑” 소리를 내며 크게 울었다. 휴지로 이마 눈 입을 닦으며 애원했다.
“○○이(딸이름)를 여기서 만나고 싶지 않은데요. 흑흑. 제가 벌은 다 받겠습니다.”
이씨의 딸은 공범으로 함께 기소될 예정이다. 시신을 유기할 때 차를 빌려준 이씨의 친구 박모씨도 공범으로 함께 재판을 받았다. 박씨는 이씨가 살인을 저지른 사실을 몰랐고 도피처를 마련해준 적도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