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금니 아빠’ 이영학(35)은 처음 선 법정에서 중학생 딸이 거론될 때마다 눈물을 쏟았다. 딸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딸의 죽은 친구를 법정에서 다시 언급하거나 사죄하지 않았다.
이영학은 17일 도봉구 서울북부지법에서 형사합의11부(재판장 이성호) 심리로 열린 1차 공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해 딸 친구를 유인해 추행·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인정했다. 재판부가 “공소장에 적힌 내용을 피고인의 소행으로 받아들여도 되는가”라고 묻자 이영학은 “인정한다”고 답했다.
이영학은 앞서 제출한 장문의 ‘반성문’에 아내와 딸을 언급하며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법정에서 이 반성문을 확인한 뒤 “형을 줄이면 앞으로 희망된 삶을 살고 싶다고 썼고, 딸을 아끼는 마음을 적었다. 그리고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이미 사망한 피해자에게 어떻게 용서를 구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정곡을 찌른 재판부의 질문에 이영학은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재판부가 “앞으로 딸을 위해서 살 것이고, 죽은 아내의 제사를 지내고 싶다(고 적었다). 딸 이야기를 많이 적었다”며 질문을 이어가자 이영학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앞으로 1분, 1초라도…”라고 말끝을 흐렸다. 딸을 위해 살겠다는 말을 하려던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다음 기회(공판)에 딸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하겠다”고 말하자 이영학은 흐느끼며 무언가를 말했다. 재판부가 우는 이유를 묻자 “딸을 여기서 만나고 싶지 않다. 내가 벌을 다 받겠다”며 오열했다. 그렇게 딸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면서도 딸의 죽은 친구를 언급하지 않았다. 사죄도 없었다.
이영학은 지난 9월 30일 딸의 친구인 A양(14)을 집으로 유인해 같은 날 오후 3시40분쯤부터 이튿날인 10월 1일 낮 12시30분쯤까지 수면제를 녹인 자양강장제를 입에 흘려 넣는 방법으로 투약하고 성인용품 등을 이용해 추행했다.
또 의식을 되찾기 시작한 A양의 얼굴을 물에 젖은 수건으로 덮어 누른 뒤 수건과 넥타이 등으로 목을 졸랐다. A양은 숨졌다. 이영학은 살해 당일 밤 9시30분쯤 딸과 함께 A양의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넣어 강원도 영월 야산 낭떠러지에서 던졌다.
검찰은 지난 1일 이씨를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강간등살인), 추행유인,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지인 박모씨는 차량으로 이영학의 시신 운반을 돕고 도피처를 물색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기소됐다. 이영학과 함께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박씨는 “이영학에게 차를 태워준 사실을 인정하지만 시신 유기에 대해서는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영학이 공판 시작 40여분 뒤 퇴장하자 방청석의 한 여성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친구에게 미안하지 않느냐”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이 방청객은 박씨의 어머니로 알려졌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