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슬픔] 슬퍼 우는 자, 울게 하라

입력 2017-11-17 14:33
우리는 우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슬픔 감정을 숨기려 하지만 슬픔도 우리 인생에 기쁨만큼 중요한 감정이다. 슬픔을 통해 공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슬픔이 있으므로 기쁨이 존재한다. 이런 슬픔을 기쁨만큼 중요하게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성장한다. 이 슬픔이란 감정에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보자.

울고 싶을 땐 울어야 한다. 눈물이 걷힌 뒤, 맑아진 눈으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사랑 많으심, 그분의 지혜로운 섭리와 계획을 바라보자. 상담가들은 “울지 말라”는 것보다 “마음이 힘들겠구나” 같은 공감의 말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2015년 개봉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일하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등 5가지 감정이 11살 소녀 라일리에게 행복을 찾아주는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의인화된 5가지 감정의 캐릭터들은 낯선 환경 속에 힘든 삶을 살아가는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밤낮으로 일한다.

영화는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폴 에크먼이 정의한 인간의 기본 감정(분노 혐오 공포 기쁨 슬픔 놀람)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통해 ‘슬픔’이 우리의 인생에 중요한 감정인지를 알게 됐다. 자세나 얼굴 표정에 나타나는 슬픔은 사람들로 하여금 도와주거나 배려하게 한다. 따라서 슬픔은 공동체 의식이 살아 있는 감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슬픔이란 감정이 위로를 만날 때 기쁨으로 변할 수 있다. 극중에서 가출한 라일리를 돌아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슬픔에서 비롯된 추억이었다. 하키 경기에서 진 라일리가 슬퍼하고 있을 때 가족들이 감싸주고 위로해 주자 슬펐던 순간이 행복한 기억으로 형성된다. 슬픔이 위로를 만난 순간 행복으로 전환된 것이다.

말할 수 없이 큰 사별의 슬픔
슬픔이란 감정은 일반적으로 소중했던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상실감(喪失感)의 표현이다. 돈을 잃어버리거나 실직을 당하거나 시험에서 실패했을 때도 슬프지만, 사별로 인한 슬픔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사별 이후 겪는 슬픔은 단순히 ‘sad'(슬픔)가 아닌 ’grief'(비탄)이며 죄책감, 후회, 수치심 등을 포함한 포괄적인 감정이다. 우리 주위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상실의 아픔으로 인한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2016년 사망자는 28만명. 이로 인한 사별의 아픔을 겪는 이는 최소 4인 가족 기준으로 112만 명에 달한다.

어떤 말이 위로가 될까. 위로의 말이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적합하지 않은 성경구절을 전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나님은 견딜만한 시련을 주신다”는 것이다. 말씀 자체는 맞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겐 위로가 되지 않는다.

백혈병과 뇌종양으로 어린 두 자녀를 3개월 사이에 잃은 K 집사는 장례식장에 오신 목사님이 “하나님은 감당할만 한 시련을 주신다”고 말하자 “목사님이 감당할 수 있으면 한번 감당해보세요”라고 되받아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이가 투병하는 동안 주위에서 “집사님의 신앙생활을 더 잘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께서 더 크게 쓰시기 위해” “혹시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나 돌아보세요” “하나님이 더 크고 놀라운 것을 주실 거야”라는 말을 들을 때 위로가 아닌 상처를 받았다.

상담가들은 재난당한 가정을 찾아가 고상한 기도를 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한다. 있는 그대로 그들의 심정으로 기도하는 것이 위로란 것이다. 함께 있어주며 “힘내세요. 기도 하겠습니다” “아무리 위로해 드릴 말을 찾아도 위로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

매월 셋째주 수요일, 서울 신촌로 ‘한빛사랑하우스’엔 소아암환자들의 생일잔치에 보낼 도시락을 싸기 위해 6~7명의 어머니들이 모인다. 봉사자들은 모두 자녀를 가슴에 묻은 어머니들이다. 이곳에서 만난 B 권사는 20년 전 19세 아들을 다발성암으로 잃었다. 아이가 떠난 후 절망 속에 집안만 있을 때 한 친구가 다가와 손을 잡으며 “힘내, 기도할께”라고 말해줬다고 한다. 그는 이 말 한마디에 힘을 얻고 일어설 수 있었다. 이후 병원에서 찬양봉사를 시작했고 현재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아직까지 아들 또래의 청년들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아직도 잊지 못하고 그러고 살아”라고 말하지만 자녀를 잃은 부모에게 자녀는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라고 했다.

상실을 경험한 이들을 돕는 방법
슬픔은 표현할 때 치유되기 시작한다. 표현 방법은 친구나 가족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내용이라면 상담가나 교회 사역자, 전문적 상담 훈련을 받은 사람에게 이야기 한다. 또 기도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거나, 고인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는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울음을 받아 줄 ‘신뢰할 만한 사람’이 필요하다. 만약 내가 그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될 때 실수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슬픔의 감정을 눈물로 표현하는 것을 마음이 약해진 것이라 생각하고 “울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울지 말라”고 하는 것보다 “마음이 많이 힘들겠구나” 등의 공감의 말이 필요하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감정을 토로하는 하나의 방편일 뿐 아니라, 위로받고 싶은 표현이기도 하다.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고 눈물을 멈췄을 때 손을 잡고 기도해주는 게 효과적인 상담법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상실수업’에서 상실감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서는 슬픔을 억누르지 말고 충분히 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쏟아내야 할 눈물이 충분히 빠져나오기 전에 울음을 억지로 멈추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슬픔을 삶의 의미로 전환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윤득형(46) 회장은 2015년 ‘슬픔학개론’을 출간하면서 국내에 ‘슬픔학’이란 낯선 용어를 처음 소개했다. 최근 서울 경희궁길 각당복지재단에서 만난 그는 슬픔도 학문적 연구대상이 돼야 하며, 이 분야가 한국에서 상담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했다.
현재 애도(슬픔)상담 전문가교육을 하고 있는 그는 슬픔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다면 우리는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자녀를 잃은 9명의 부모들이 어떻게 슬픔을 극복했는지를 연구했고, 그 과정에서 기독교적 영성이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했다.

“9명의 부모들은 정기적으로 교회 활동, 성경읽기,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소속감을 느꼈습니다. 이 소속감은 하나님과 그리고 사람들과의 깊은 결속을 의미합니다. 이런 결속을 통해 하나님은 실제적인 방법으로 고통당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그는 슬픔 치유를 위해 ‘감정적 재배치’와 ‘공간적 재배치’가 필요하다고 제언 했다. 감정적 재배치란 슬픔이 삶을 압도 하지 않도록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감정적 ‘공간'을 두는 것이다.

“생각을 금하거나 심리적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 아니라, 느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공간적 재배치가 필요합니다.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장소, 또는 가까운 박물관, 카페 등에 고인을 추모할 만한 장소를 두는 것입니다. 이 장소에서 슬픔과 기쁨, 눈물과 웃음, 감사와 후회를 경험하면서 슬픔은 서서히 치유될 것입니다.”

서대문구 신촌로 한빛사랑하우스에서 어머니 봉사자들이 소아암 환우들에게 보낼 도시락을 싸고 있다.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루게릭병으로 3년간 투병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평생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 슬픔치유상담을 공부했다. 미국 시카고신학대학원에서 목회심리학을 공부했고,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에서 목회상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라졌다. 그들의 부재로 여전히 상처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상실을 이제 다르게 느낀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예레미야 31:13)


슬픔에 하나 더 - 눈물의 영성

“더러는/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흠도 티도,/금가지 않은/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더욱 값진 것으로/드리라 하올 제/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김현승의 시 ‘눈물’ 전문)

네 살된 아들을 병으로 잃은 시인이 그 아픔을 믿음으로 달래며 쓴 시다. 시인은 하나님 앞에 드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변하기 쉬운 웃음이 아니라 그 분 앞에서 흘리는 눈물뿐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우는 것은 컴퓨터를 리셋하는 일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 ‘감정적인 눈물’이 심리치료의 효과가 있다.

우리는 눈물의 기도를 통해 보이지 않는 길을 찾을 수 있다. 마음을 정화시키는 회개의 눈물에 의해 육신의 눈에 끼어있던 안개가 벗겨지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게 될 때, 사람들은 진정한 거듭남을 체험하게 된다.

방지일(1911~2014) 목사는 생전에 ‘눈물의 신학’을 강조했다. 눈물의 신학은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 56:8)라는 말씀에 근거해 자신과 이웃, 하나님을 감화시키는 힘이 눈물에서 시작된다는 함축된 의미를 담고 있다. 방 목사는 ‘주님이 병에 담으시는 세 가지 눈물’을 “첫째 성령의 힘으로 죄를 인식하고 참회할 때 나오는 회개의 눈물, 둘째 하나님의 은혜라는 극치에 도달했을 때 나오는 감사의 눈물, 셋째 지옥의 비탈길을 달리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고 했다. 회개의 눈물이 있을 때 감사의 눈물이 있으며, 감사의 눈물이 있을 때 사랑의 눈물이 나온다.

‘눈물의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것은 비관론자가 되게 해달라는 말이 아니라 눈물의 사람이 돼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게 해달라는 말이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한 채 살아가기 위해 먼저 눈물의 사람이 돼야 한다. 눈물이 걷힌 뒤, 맑아진 눈으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사랑 많으심, 그분의 지혜로운 섭리와 계획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지현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