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명화 한 장이 독서나 강연보다 더 깊은 감동을 줄 때가 있다. 특히 성경 이야기를 옮겨 놓은 명화들의 숨겨진 의미를 깨닫다 보면 저절로 말씀을 묵상하게 된다. 10여 년 전부터 서울 평창동 예능교회에서 ‘명화로 여는 성경’을 주제로 성경공부를 인도해 온 전창림 (63) 홍익대 교수는 거장들이 남긴 수많은 성화를 감상하며, 성화 그 자체가 성경구절이란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피터르 브뤼헐이 그린 ‘바벨탑'을 감상하며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는 잠언 구절을 되새기고 과학과 인간의 지식이 아무리 높아도 교만에 빠지면 무너진다는 것을 성찰하게 됩니다.” 전 교수의 도움말로 명화 속 성경 이야기를 정리 했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교수 ‘성화 이야기’-
‘탕자의 귀향’, ‘다윗과 우리아’
중세 유럽의 서민들은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읽을 수 없었다. 성경 내용은 사제를 통해서만 전해졌다. 규모가 큰 성당들은 성경 말씀과 주님의 가르침을 그린 스테인드글라스 창과 벽화로 장식했다. 성당 자체가 한 권의 성경이 됐다. 많은 화가들은 성당의 주문을 받아 성직자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준 경우도 있지만 가끔은 화가 자신이 깊은 영성과 기도를 통해 마치 한 편의 설교 같은 명화를 남기기도 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1606~1669)은 ‘묵상을 이끄는 말씀 같은 명화’를 많이 남겼다. 눈길을 끄는 건 젊은 시절 부귀영화를 누리며 방탕한 생활을 했던 그가 혹독한 시련을 겪은 말년에 명작들을 그렸다는 것이다. 그는 두 아들 두 딸 두 아내를 죽음으로 잃고, 재산도 탕진해 홀로 비참한 시간을 보냈다. ‘탕자의 귀향’ ‘다윗과 우리아’ 역시 이 시기에 그려진 작품들이다.
‘탕자의 귀향’(눅 15:25~32)에 그려진 작은 아들은 머리카락도 빠지고 옷도 신발도 다 해졌다. 아들의 등에 얹은 아버지의 두 손이 특별하다. 왼손은 억센 남자의 손, 오른손은 여린 여자의 손이다. 아마도 렘브란트는 돌아온 탕자를 따뜻하게 감싸 안고 모든 걸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갈망했던 듯하다. 그래서 왼손은 자신의 모든 시련을 해결해 주실 강한 능력의 손으로, 오른손은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사랑의 손으로 그린 것이다. 전 교수는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마지막 작품이다. 자신을 ‘돌아온 탕자’로 묘사함으로 자신이 죽은 후 신의 용서를 바라는 절실함을 담았다”라고 했다. 늘 순종하며 집을 지키던 첫째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동생의 귀향을 반기지 못하고 어둠 속에 애써 거리를 두고 있다.
구약성경 사무엘하 11장은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주제다. 화가들은 대부분 아름다운 밧세바의 여체를 표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깊은 묵상(사무엘하 11:2~6, 13~15) 끝에 우리아가 자신의 운명을 인지하고 제물이 됨을 받아들이는 장면을 그렸다. ‘다윗과 우리아’에 그려진 우리아의 핏빛 옷은 그가 곧 죽을 운명임을 암시한다. 이는 마치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처럼, 다윗 왕의 죄악을 대신 지고 제물이 될 우리아의 죽음을 상징한다. 오른쪽 뒤 어둠 속에 다윗 왕이 초라한 눈빛으로 앉아있다. 전 교수는 “파산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은 화가의 슬픔이 다윗의 슬픔으로 전이 됐다”며 “왼쪽에 그려진 한 노인의 모습은 렘브란트 자신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화가 자신도 다윗처럼 죄를 짓고 살았음을 회개하는 의미로 자화상을 그렸다는 것이다.
‘선한목자’와 ‘양’
많은 화가들이 성경에 등장하는 ‘선한 목자’를 사랑과 위엄이 있는 깨끗한 차림에 양을 어깨에 둘러맨 모습으로 그렸다. 그러나 독일의 루카스 크라나흐(1472~1553)는 다 해진 속옷 한 장만 겨우 걸친 상처투성이의 목자를 그렸다. 손의 상처와 피가 얼룩진 옷을 보면 선한 목자(눅 15:3~7)는 한 마리 잃은 양을 찾기 위해 산 넘고 물 건너 온갖 위험을 무릎 썼음을 알 수 있다. 맹수와 싸우고 벼랑 끝에 있는 어린양을 발견해 품에 안았을 것이다. 목자의 얼굴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만족하는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평온하다. 한없는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에스파냐의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1598~1664)의 ‘양’은 그리스도의 ‘희생’(사 53:5~7)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걸작이다. 꼼짝 못하게 묶여 곧 도살될 어린 양의 평온한 표정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화가는 대속 제물로서의 예수님을 표현하기 위해 발을 묶어 실제 제단에 올려놓은 어린 양 한 마리를 그렸다.
검은 배경에 대비되는 하얀색 어린 양은 예수님의 죄 없음을 방증한다. 형벌을 받아 마땅한 우리의 허물 때문에 예수님은 보배로운 피를 쏟으셨음을 기억하게 한다. 전 교수는 “이 그림을 보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고 우리가 어떻게 해서 구원을 받았는지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구약시대 제사의 대속물이었던 양, 신약시대 그 양과 같이 희생 제물이 돼 십자가에 달려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님과 오버랩 된다. 그림은 구약과 신약을 꿰뚫는 예수님의 표상”이라고 말했다.
‘아내에게 조롱당하는 욥’
17세기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드 라투르(1593~1652)는 구약성서 욥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 친구와 엘리후의 지난한 변론보다 아내와의 짧은 대화 순간을 신비스럽고 정적인 구도로 묘사했다. 욥과 하나님 사이의 긴장감을 극대화해 깊은 묵상으로 안내한다.
그림에서 유일한 빛은 가물거리는 촛불 하나. 촛불은 하나님을 상징한다. 꺼져가는 촛불은 욥의 초라한 처지를 나타내는 듯하다. 의인 욥은 왜소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인다. 그의 발치에 상처를 긁던 깨진 질그릇 조작이 놓여있다. 화면을 압도적으로 채우고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거대하고 견고한 아내의 모습이다. 세상을 상징한다. 아내는 화사하고 풍성한 붉은 옷을 입고 “이제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며 욥을 조롱한다. “왜 의인이 고통 받아야 하는가.” 욥은 이 질문에 대한 결론을 다음과 같이 내렸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나라”(욥1:22, 2:10) 전 교수는 “욥은 의인이지만 사람의 의가 하나님의 의를 넘어설 수는 없다. 욥이 다시 하나님의 인정과 축복으로 과거보다 훨씬 큰 축복을 받았지만 사실 욥이 받은 진짜 큰 축복은 고난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동방박사의 경배’
이탈리아의 지오토 디 본도네(1267년경~1337)가 그린 ‘동방박사의 경배’는 이탈리아 파도바의 스크로벤니 성당에 그려진 연작 중 하나다. 이 성당은 건축가이기도 한 지오토의 개인 미술관이라 할 만큼 그의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오래전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 동방에서 천문을 연구하던 박사들이 별을 따라 와서 아기 예수께 경배 드리는 장면(마 2:1~6,11)을 그린 수작이다. 지오토는 1305년에 76년을 주기로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는 핸리 혜성을 관측한 후 ‘동방박사의 경배’에 혜성을 등장시켰다. 전 교수는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은 하나님이 가장 먼저 선택하신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방인들이었다. 이 사실은 매일 성경을 읽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신앙인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일깨워 준다”고 했다.
흥미로운 점은 성모 마리아가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이 지워져 흔적만 남아있는데 파란색이다. 전 교수는 “중세엔 파란색 안료가 금보다 비쌌다. 교회에서 화가들에게 그림을 맡길 때 비싼 파란색은 성모 마리아의 옷 외에는 못쓰게 했다”고 했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
사실 그림의 표현 매체는 물감이며 물감은 화학 물질이다. 알고 보면 미술은 화학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의 표현 매체인 물감이 다름 아닌 ‘화학 물질’이며 캔버스의 물감이 마르고 발색하고 퇴색하는 모든 과정은 ‘화학 작용’이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미술과 과학, 미술과 영성의 통섭을 추구해온 학자다. 그는 프랑스 파리 국립대학에서 고분자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1990년부터 현재까지 홍대 바이오화학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과학저널에 미술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홍익대 예술학부에서 ‘미술재료학’ 강의도 하고 있다. 미술과 화학 또는 예술과 과학의 접점을 찾아가는 일을 해온 것이다.
2007년 ‘미술관에 간 화학자’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과학과 미술을 가장 이상적으로 통섭한 책이란 찬사를 받았다. 올해는 미술과 영성의 통섭을 위해 ‘명화로 여는 성경’을 출간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화가의 꿈을 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반 활동을 하면 전국 미술대회 수상을 휩쓸며 재능을 인정받았으나 화공 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의 반대로 미술전공을 포기하고 화학을 전공했다. 그의 부친은 알파색채 고 전영탁 회장이다.
프랑스 유학 당시 화학실험실과 오르세 미술관을 수없이 오가며 화가의 꿈을 화학자로 풀어냈다. 그의 연구 분야는 미술에 있어서의 화학의 문제, 즉 물감과 안료의 변화, 색의 특성 등이다. 그는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간 것도 그림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화학과 그림을 다 공부하고 싶었으나 버거워서 결국 그림을 접고 화학 공부에 전념했다”라고 했다.
전 교수는 학자로서의 삶 못지않게 신실한 신앙인으로 살아왔다. 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와 대학부 교사로 봉사했고, 초신자 성경공부를 인도했다. 99년엔 4복음서를 쉽게 이해하도록 풀어쓴 ‘통권 복음’을 출간했다.
이지현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