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A씨는 지난 11일 페이스북에서 일면식도, 앞으로 만날 일도 없는 콜롬비아인으로부터 쪽지를 받았다. 쪽지에는 어색한 문장으로 번역된 한글로 험악한 말들이 적혀 있었다. 두 눈을 손가락으로 당겨 길게 만든 얼굴을 촬영한 사진도 첨부됐다. A씨는 이 쪽지를 왜 받았는지, 사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루 전 콜롬비아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에드윈 카르도나의 페이스북에 댓글을 적어 인종차별 행위를 항의한 게 원인이었다. 카르도나는 경기장에서 쪽지에 담긴 사진과 같은 행동으로 한국 선수들을 조롱했다.
A씨는 이 쪽지를 웃어넘기지 않았다. 커피농장에서 지친 표정으로 자루를 옮기는 콜롬비아 어린이 사진을 첨부해 회신했다.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콜롬비아 경제 상황을 강조해 쪽지 발신자를 공격할 목적이었다. A씨는 콜롬비아인과 주고받은 페이스북 쪽지 대화 내용을 평소 자주 방문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렸다. 커뮤니티 회원 중 누구도 A씨의 행동을 지적하지 않았다. “심했다”는 말 정도가 유일한 비판이었다.
축구장 ‘인종차별 조롱’이 장외 설전으로
한국과 콜롬비아는 지금 ‘SNS 전쟁’ 중이다. 축구경기가 발단이었다. 카르도나는 지난 10일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의 친선경기에 콜롬비아 대표팀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후반 18분 양국 선수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을 때 한국 미드필더 기성용(28·스완지시티)을 바라보며 두 눈을 손가락으로 잡고 길게 늘어뜨려 조롱했다. 서양인이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이렇게 행동한다. 이 동작은 경기장의 인종주의 철폐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징계 사유로 부족함이 없었다. 콜롬비아축구협회는 홈페이지에 카르도나의 사과 영상을 게재했지만 한국인의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카르도나의 페이스북 계정은 같은 날 밤 한국과 콜롬비아 네티즌의 전쟁터로 바뀌었다. 콜롬비아 라디오 방송 ‘라칼레’ 진행자가 아시아인을 희화한 가면을 쓰고 카르도나와 같은 동작으로 조롱한 영상이 유튜브를 타고 한국에 전해지며 갈등은 악화됐다. 그간 한국과 콜롬비아 사이에 국민감정을 자극할 사건은 없었다. 외교부가 올해 집계한 콜롬비아 거주 한국인은 941명. 이 숫자가 말해주듯 교류도 그리 많지 않다. 카르도나의 인종차별 행위는 아시아인을 무시하는 콜롬비아의 정서가 사실상 처음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사건이었다.
문제는 카르도나의 인종차별 행위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콜롬비아인을 향해 같은 방식으로 갚아주는 ‘차별적 행태’에 있었다. 우리나라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카르도나의 계정에 댓글을 달면서 콜롬비아인을 ‘마약범죄자’나 ‘저임금 커피노동자’로 묘사했다. 지난 8월 종식된 반세기 내전의 원흉 ‘마약 카르텔’, 세계 3위 생산량에 걸맞지 않게 열악한 커피농장의 노동인권을 겨냥한 것이다. 이는 콜롬비아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이 마약과 커피노동에 국한돼 있다는 오해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한국과 콜롬비아의 ‘SNS 전쟁’은 심화됐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마저 사라진 차별의 악순환은 사건과 무관한 카르도나의 어린 아들마저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 페이스북 이용자 중 일부는 카르도나의 계정에 올라온 아들 사진에 “커피농장에서 저임금 노동자가 될 것”이라거나 “마약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식의 댓글을 달아 공격했다. 카르도나는 페이스북에서 아들의 사진을 모두 삭제했다.
차별을 응징하는 차별은 온당할까
카르도나가 한국 선수들을 조롱한 행동은 아시아인 모두를 모욕한 인종차별 행태였다. 이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적법한 절차가 필요하다. FIFA 규정에 따른 출전정지 등의 징계가 가능하다. 콜롬비아 사법기관의 처벌을 유도할 수도 있다. 콜롬비아 헌법 13조는 ‘성별 인종 국적 가족 정치 언어에 따른 차별을 명백하게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과 규정에 따른 조치는 콜롬비아 사법부나 FIFA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지만 콜롬비아인과 벌이는 ‘SNS 전쟁’보다 현실적이다.
SNS에서 험담을 주고받는 유형의 갈등은 피해자를 양산한다. 이 피해자는 곧 가해자로 돌변하기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여성혐오’ ‘남성혐오’ 논쟁이 그렇다. 오랫동안 여성을 차별했던 한국사회의 관습은 페미니즘의 확산을 불렀다. 이 과정에서 양성평등 이념이 변질된 ‘남성혐오’ 목소리가 돌출됐다. ‘남성혐오’는 다시 페미니즘을 왜곡해 여성을 비판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이 악순환이 ‘여성혐오’와 ‘남성혐오’의 끝없는 갈등 사슬을 연결하고 있다.
‘김치녀(한국 여성을 비하한 표현)’ ‘상폐녀(여성을 주식의 상장폐지 종목에 비유한 표현)’ ‘한남충(한국 남성을 벌레에 비유한 표현)’ ‘번탈남(번식 경쟁에서 탈락한 남성)’ 같은 혐오 발언은 SNS 타임라인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두 개의 차별이 충돌한 한국과 콜롬비아의 ‘SNS 전쟁’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갈등의 해법을 찾지 못하는 ‘혐오사회 한국’의 단면을 드러낸 사건이다.
비이성적 갈등에 대처하는 자세
세계 분쟁지역을 15년 넘게 취재한 독일 언론인 카롤린 엠케는 지난해 펴낸 저서 ‘혐오사회’에서 비이성적 갈등의 피해자가 가해자로 돌변하는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혐오로 혐오에 맞서는 사람은 이미 같은 모습으로 변하도록 스스로 허용했다. 그렇게 혐오하는 자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졌다.” 엠케는 그러면서 “타인을 멸시하고 적대하는 행위, 이를 방관하는 태도에서 혐오는 공모되고 학습된다”고 덧붙였다. 비이성적 갈등은 개인보다 사회적 요인이 크다는 것이 엠케의 분석이다.
막말과 고성이 오가는 갈등 상황마다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한국에도 최근 해결의 실마리는 나타나고 있다.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 재개가 대표적이다. ‘탈(脫)원전’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 원전에 지금까지 투입된 비용, 국내 전기 수급 상황 등 현실적 문제가 크다는 여론을 감안해 공론화를 선택했다. 시민참여단은 장기적인 방향으로 탈원전을 권고하면서 원전 건설 재개에 손을 들어줬다.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 재개는 선호도의 총합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이성적이고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는 숙의(熟議) 과정이 선행돼야 갈등을 봉합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사례다. 남녀 사이에서, 노년과 청년 사이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수와 진보 진영에서, 차별이나 혐오와 같은 비이성에 맞서야 하는 상황마다 갈등을 해결할 방법은 결국 이성뿐이라는 얘기다. 여성·호남·외국인을 노골적으로 차별했던 극우 성향 커뮤니티 회원들, 독립운동가 안중근과 노동운동가 전태일이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로 비하했던 여성 전용 커뮤니티 회원들을 향했던 비판 여론도 비이성적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성의 ‘자정작용’으로 볼 수 있다.
엠케는 비이성적 갈등이 언제든 집단적 광기와 폭력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혐오와 폭력이 어떤 방향으로 분출될지, 어느 누구를 표적으로 삼을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장벽과 장애물을 제거할지 알 수 없다. 이 모든 것들이 우연하거나 단순한 계기로 이뤄지지 않고 정해진 방향으로 유도된다”며 “혐오는 정확한 관찰, 면밀한 구별, 자기성찰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