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한 지 이틀째인 16일. 전날보다 더한 공포가 포항을 감싸고 있었다. 포항시 흥해읍 주민들을 위한 대피소인 흥해실내체육관에는 이날 오전 한때 1200명이 넘는 주민이 몰렸다. 밤새 여진이 이어지면서 두려움을 느낀 주민들이 속속 대피소를 찾은 것이다. 대피소 관계자는 “들어오는 주민도 있고 나가는 주민도 있어 정확한 집계가 어렵지만 어제보다 확실히 인원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대피소에 있는 주민들 가운데는 정신적 충격으로 체증과 두통 등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씻을 공간도 부족해 불편을 겪고 있었다.
진앙에서 가까운 포항 북구 곳곳엔 지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흥해실내체육관 인근 대성아파트는 경찰 병력이 폴리스라인을 치고 출입을 통제했다. 이 아파트 E동은 육안으로도 심하게 기울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민대피령이 내려져 이곳 주민들은 모두 대피소에서 지내고 있다. 출입을 막아놓은 필로티 구조 건축물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무거운 기운이 감돌고 있지만 일부러 이곳으로 달려와 주민들을 돕는 이들도 많았다. 포항시자원봉사단과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 사랑의 밥차 경상지부, 힘찬 동행 등에서 나온 자원봉사자들이 주민들을 돌봤다. 사랑의 밥차와 힘찬 동행 회원 20여명은 줄지어선 주민들에게 음식을 대접했고 다른 단체 회원들도 생필품을 지급하고 주변을 청소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공기업과 대기업 소속 봉사단도 속속 도착했다. 전날 100명 수준이던 자원봉사자는 600명 이상으로 늘었다. 권경옥(63·여) 포항시자원봉사센터 소장은 “자원봉사자들이 소식을 듣고 계속 찾아오고 있다”고 기뻐했다.
김영복(65) 사랑의 밥차 경상지부장은 “지진 때문에 너무 놀라 대피하는 와중에 포항시에서 밥차 봉사를 부탁해와 흔쾌히 받아들였다”며 “지진이 무섭긴 하지만 봉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붕어빵을 무료로 나눠주는 푸드트럭도 눈길을 끌었다. 이 트럭은 포항예수전도단이 평소 전도를 위해 운영하던 것인데 이날은 지진에 놀란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붕어빵을 굽고 있었다. 천태석(51·목사) 지부장은 “오전에만 400여개의 붕어빵을 찍어냈다”고 밝혔다.
한동대는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학생과 교직원의 침착한 대응으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학생들에 따르면 지진 발생 직후 심적으로 불안해하는 학생들은 교내 상담센터 직원들이 도와줬고 부상자는 보건실 직원들이 치료했다. 기숙사에 있는 귀중품과 짐은 학생들이 안전모를 쓰고 차례로 들어가 들고 나왔다.
학생들은 지진 당시 통제에 따라 침착하게 운동장으로 대피했다. 이처럼 학생과 교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경주 지진 이후 총학생회가 학교 측과 협력해 지진 대피 매뉴얼을 만들고 대피훈련도 실시한 덕분이다. 김기찬(27·4학년) 총학생회장은 “경주 지진 이후 학교의 협조를 받아 생활관에 안전모를 비치하는 등 구호물품을 확보했고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지진과 소방 등의 재난 대비 대피훈련을 5회 정도 실시했다”며 “학생대표들도 매뉴얼을 잘 숙지하고 있었고 학생 간 연락체계도 잘 갖춰져 있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피소와 학교 인근, 학원가 등 시내 곳곳에서 만난 수험생들은 일주일간 공부할 장소에 대한 걱정을 했다. 동지여고 3학년 함희연(19)양은 “친구들 사이에도 ‘지진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바에야 연기하는 것이 낫다’는 쪽과 ‘위험이 따르더라도 원래대로 치렀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으로 나뉜다”며 “개인적으로는 연기한 것이 나은 것 같은데 그 기간 동안 마음 놓고 공부할 곳이 마땅치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포항시교육청은 학생들이 남은 기간 동안 공부할 수 있는 여건 등을 조사해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사설 학원들도 안전하게 학원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