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15일 결국 사표를 냈다. 5월 14일 임명된 지 6개월 만이다. 전 수석은 의원 시절 보좌관들이 홈쇼핑 재승인 비리에 연루돼 구속된 상태다. 검찰은 전 수석을 직접 수사하겠다고 공식화했다. 현직 청와대 수석에 대해, 그것도 정권 초기에 검찰이 칼날을 들이대는 ‘이례적’ 상황에서 전 수석은 끝내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
◇ “옛 비서들의 일탈행위… 대통령께 누 끼쳐 참담”
전 수석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오늘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했다"며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정무수석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 최선을 다해왔고, 다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누를 끼치게 돼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염원으로 너무나 어렵게 세워진 정부, 그저 한결 같이 국민만 보고 가시는 대통령께 누가 될 수 없어 정무수석의 직을 내려놓는다. 국민께서 문재인정부를 끝까지 지켜주시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또 “과거 비서들의 일탈행위에 다시 한 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저는 어떤 불법행위에도 관여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굳은 표정으로 춘추관에 들어선 전 수석은 미리 준비해온 입장문을 읽어 내려갔다. 중간 중간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과거 보좌관을 언급하기에 앞서서는 호흡을 한 번 가다듬었다. 입장 발표를 마친 뒤 질문을 받지 않고 퇴장했다.
◇ 檢 ‘전병헌 수사’ 본격화… 내주 소환될 듯
검찰은 전병헌 수석 직접 수사를 공식화했다. 한국e스포츠협회 후원금 수수 및 횡령 사건에 등장한 주요 피의자들은 모두 전 수석과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다. 전 수석은 “불법 행위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검찰은 주변 인물을 차례로 수사망에 넣으면서 그를 포위해 왔다. 전 수석은 현 정부 청와대 고위인사 중 처음 검찰 포토라인에 설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검사 신봉수)는 15일 “수사 진행 상황 등을 감안할 때 협회 명예회장이던 전 수석을 조사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날 핵심 참모인 전 수석 조사 방침을 밝힌 거였다. 전 수석은 늦어도 다음 주 안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실에 앉게 될 전망이다.
롯데홈쇼핑이 2015년 7월 한국e스포츠협회에 3억3000만원을 후원하고, 이 가운데 1억1000만원이 빼돌려지는 과정에 연루된 인물들은 전 수석 지인들이다. 후원금 수수는 전 수석의 전직 비서관 윤모(34·구속)씨가 주도했다. 그는 롯데홈쇼핑 방송 재승인 결정이 난 직후인 2015년 5월초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공무원을 불러 재승인 심사에 문제제기를 했다. 동시에 롯데홈쇼핑 측엔 후원을 요청했다. 검찰은 이 돈을 뇌물로 판단했다.
자금 횡령에는 윤씨와 동료 비서관인 김모(구속)씨, 폭력조직 구로동식구파 출신 배모(37·구속)씨가 공동으로 가담했다.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배씨는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 알려졌다. 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민주당 정치인, 전 수석 지역사무실 관계자 다수와 연결돼 있었다. 배씨는 전 수석 보좌진을 통해 전 수석을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배씨의 한 지인은 배씨가 수년 전부터 전 수석 일을 도왔다고 했다. 총선 때 이른바 ‘병풍’으로 동원됐고, 전 수석의 딸이 모 대학교 총학생회장을 할 때 일도 도왔다고 주변에 말했다고 한다. 후원금 자금세탁에 동원된 T사와 S사 대표도 배씨와 지인이거나 인척 관계인 것으로 전해졌다. S사 대표는 전 수석 지역구인 서울 동작갑 청년위원장도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보좌진과 지인 등 다수가 자금세탁까지 하며 거액의 협회 자금을 횡령하는 과정을 전 수석이 전혀 몰랐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 전 수석, e스포츠협회 사조직화?
전 수석은 국회의원이던 2013년 1월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한국e스포츠협회 회장에 올랐다. 그 이전엔 1999년 창립 이후 줄곧 기업인들이 회장을 맡아 왔었다. 전 수석 체제에선 그의 비서관 윤씨가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 소속은 아니지만 내부에선 회장 비서로 통했다. 2011년 회장사인 한 통신업체 직원으로 파견된 조모(46)씨는 윤씨를 부회장이라고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전 수석 취임 이후인 2014년 사무총장이 됐다.
검찰은 전 수석이 회장 취임 이후 윤씨와 조씨 등 측근들을 통해 한국e스포츠협회를 사실상 사조직화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전 수석이 국회의원 겸직 금지 규정에 따라 2014년 12월 회장에서 명예회장으로 물러났지만 따로 후임을 세우지 않고 조씨에게 대행을 맡긴 것도 계속해서 협회를 관리 하에 두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조씨는 협회의 예산·인사·행사 등 주요 업무를 윤씨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 등이 협회 후원금을 빼가는 걸 알면서도 묵인 내지 동조했고, 지난해 전 수석이 낙천한 후 윤씨에게 협회 법인카드를 지급해 사용케 하기도 했다. 윤씨는 카드로 1억여원을 유흥비 등에 소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 직원들이 전 수석 공천 탈락 항의 집회에 동원되고, 협회 이사회 측이 정관을 바꿔 전 수석에게 급여를 지급한 것도 배경엔 전 수석 측근들이 있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