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 주인공이 와인을 마시고 귀가하며 음주운전을 하는 모습, 여주인공이 편의점에서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는 장면 등 음주 행위를 빈번하게 그리는 TV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 대해 정부가 개선안을 권고키로 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16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2017년 음주폐해 예방의 달’ 기념식을 갖고 절주문화 확산을 위한 ‘미디어 음주장면 가이드라인‘을 제안한다고 15일 밝혔다.
최근 드라마를 비롯한 각종 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선 음주 장면이 지속적으로 방영되고 있다. 당국이 지난해 방송사별 드라마·예능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한 결과 드라마는 회당 평균 1.03회 음주장면이 등장했다. 예능은 회당 평균 0.98회 음주 관련 대사가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진행자가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우정주'란 이름으로 권하는 장면이 방영됐고, 이는 SNS에서 유행처럼 확산되기도 했다. 드라마에서는 공원이나 어린이 놀이터 등에서 술 마시는 것을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음주 후 폭력을 그린 장면도 종종 등장했다. 드라마 주인공이 포장마차에서 일어난 싸움을 말리자 이에 앙심을 품은 주변 취객이 소주병을 들고 주인공을 따라가는 장면도 있었다.
연예인 출연자가 광고모델로 활동 중인 주류 제품을 노출시키기도 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이돌 가수 두 명이 외국인 친구에게 맥주를 활용해 요가를 배우는 모습을 방영하면서 이 가수들이 광고 모델로 활동 중인 H사의 주류 제품이 계속 노출됐다. 올해 들어서는 드라마·예능 프로그램 음주 장면의 32.4%를 ‘원샷’ 또는 ‘폭탄주’ 등의 해로운 음주 모습이 차지했다.
미디어 음주장면 가이드라인은 지난 9월부터 제작자, 방송심의기관, 시민단체, 언론, 학계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간협의체가 논의한 결과물이다. 가이드라인은 △음주 장면이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 아니라면 넣지 말아야 한다 △유명인의 음주 장면은 그 영향력을 고려해 신중하게 묘사해야 한다 등 10가지 내용이 담겼다.
기념식에서는 절주사업에 기여한 10개 단체와 유공자 13명에게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수여한다. 절주문화 확산에 앞장선 대학생 절주서포터즈 17개팀에게는 장학금도 지급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10만여명이 음주 관련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교통사고 사망자의 20배에 달하는 수치다. 세계보건기구도 2010년에 발표한 ‘해로운 음주 감소를 위한 세계 전략’에서도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범죄나 자살도 음주와 깊은 연관이 있다. 대검찰청 범죄 분석 결과에 따르면 폭력 범죄와 살인, 강도 등 흉악 범죄의 30% 이상이 음주 상태에서 발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자살 실태 조사를 보면 전체 자살 시도자의 44.1%가 자살 시도 전에 음주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