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6일. 2017년에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어김없이 한파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수능날이 되면 소리 없이 찾아온 추위가 수험생들의 마음을 더 시리게 하곤 합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따듯한 마음이 세상을 한기에서 온기로 바꿔주는 듯 합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한 영상을 보면 수험생으로 보이는 교복 차림의 한 여학생이 지하철 역사에서 코피를 흘리며 시민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여학생의 한 손에는 두꺼운 몇 권의 책이 들려있었고 큼지막한 가방이 그녀의 어깨에 무게를 더하고 있었습니다.
한 손으로는 책의 무게를 견디고, 다른 한 손으로는 흘러 내리는 코피를 막으며 시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저기 혹시 휴지 있으세요? 코피가 나가지고..”
여학생의 물음에 시민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입니다.
한 시민은 선뜻 자신의 손수건을 주머니에 꺼내어 한치 망설임도 없이 반으로 찢어 내어 줍니다. “이거 코에다 대고 있어”라며 손녀 딸 챙기듯 따듯한 마음을 전합니다.
“과로하지 말고 공부도 건강 몸 생각하면서 해야지. 코피를 자주 흘리면 안되거든? 움직이지 말고 한참 앉아있어”라며 한 할머니는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합니다.
또 다른 시민은 코피를 흘리는 여학생의 요청에 “제가 위에 잠깐 다녀올게요”라며 황급히 근처 어디론가 뛰어가 물티슈를 사옵니다. 허겁지겁 다녀와서는 “물티슈 가져가세요. 지금 산거니까”라며 여동생 챙기듯 여학생을 대합니다.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한 시민도 여학생의 책을 들어주며 마음을 안정시켜 줍니다.
“제가 수능을 준비하고 있어가지고..”
이 한 마디에 시민들은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해주고 싶은 것을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인가 봅니다.
한 여성은 자신이 들고 있던 쇼핑백을 꺼내 여학생의 책을 가지런히 넣어 줍니다. “책 여기다 넣어 가세요. 어차피 저 가방 비어있어서 괜찮아요”라고 말을 건넵니다. 그러면서 언니가 동생에게 말하듯 “조금만 참아요. 대학가면 하고 싶은 거 다할 수 있으니까”라며 여학생의 어깨를 토닥토닥 쓰다듬어 줍니다.
코피를 흘리는 여학생을 두고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시민도 있습니다. “수능 끝나고 놀이공원 가고 하고 싶은 거 다해야죠. 코피는 놀면서 흘려야죠..준비한 만큼 잘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한참 동안 코피가 멈출 때까지 여학생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과 마음은 다 똑같았습니다. 그날 만큼은 누군가의 여동생이었고 손녀였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챙겨야 할 우리 주위의 따듯한 존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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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훈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