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정부 국정원장 3명 중 가장 먼저 긴급체포된 이병기, 왜?

입력 2017-11-14 09:31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13일 오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소환되던 중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이병기 전 국가정보원장이 검찰 조사 도중 긴급체포됐다. 이병기 전 원장은 박근혜정부 국정원장 3명 중 가장 늦게 소환됐지만 구속영장 청구 수순인 긴급체포는 가장 먼저 이뤄졌다. 먼저 소환된 이병호 남재준 전 원장은 모두 장시간 조사를 받은 뒤 귀가했다.

박근혜정부 국정원장은 남재준 → 이병기 → 이병호 순이었다. 검찰은 이병호 전 원장을 가장 먼저 불렀고, 이어 남재준 전 원장을 소환했다. 이병기 전 원장을 가장 늦게 불러 조사하면서 긴급체포까지 단행한 배경은 검찰 수사 방향을 엿보는 단초가 된다.

◇ ‘이병기 국정원’ 상납액 급증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양석조 부장검사)는 14일 이 전 원장을 소환해 박근혜정부 시절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혐의를 조사하다 전격 체포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전 원장은 국정원 특활비 총 40여억원을 박 전 대통령 측에 상납해 국고에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원장은 2014년 7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국정원장을 역임하고 이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 이어 박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검찰에 따르면 남재준 전 원장 시절 월 5000만원대이던 상납액이 이 전 원장 때 월 1억원으로 불어났다. 검찰은 이병기 전 원장 당시 이뤄진 상납이 뇌물죄 성립 요건인 직무관련성 및 대가성을 입증하는 고리이자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지원이 ‘관행’이었다는 반론을 무너뜨릴 증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남재준 전 원장은 특활비 상납이 ‘관행’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박 전 대통령 지시'로 여겨진 청와대 측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관행적으로 청와대에 제공했다던 자금의 액수가 이병기 전 원장 때 2배로 늘어난 경위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상납액이 늘어난 배경에 청와대의 ‘특별한’ 요구가 있었고, 그에 부응해 액수를 늘린 거라면 관행을 넘어서는 뇌물로 규정할 요건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 전 원장이 국정원장을 그만둔 뒤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한 것도 남재준 이병호 전 원장과 다른 점이다. 이 전 원장은 청와대와 국정원의 최고 자리에 모두 앉아 있었다. ‘상납 고리’의 양쪽을 차례로 경험한 터라 범죄 사실을 입증하는 데 필요한 추가적인 진술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병기 전 원장을 상대로 국정원의 보수단체 지원 의혹(화이트리스트)도 조사했다. 이병기 전 원장은 지난 1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의해 자택 압수수색을 받고 소환까지 이뤄졌으나 처벌은 피했었다.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밤샘 조사를 받은후 검찰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 3명 모두 영장 가능성… 다음은 박 전 대통령 조사


남재준 이병호 전 원장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해 조사받았다. 검찰은 두 사람에 대해서도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이들은 검찰 조사에서 청와대 요구로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사실은 대체로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의 자체 조사 결과와 검찰이 확보한 관련 자료만으로도 상납의 사실관계 입증에는 무리가 없다고 한다.

이병기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그 결과를 지켜본 뒤 남재준 이병호 전 원장도 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크다. 전직 국정원장 신병처리가 마무리되면 상납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 조사 시기 및 방법을 결정할 계획이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재판 출석까지 거부하는 만큼 검찰은 서울구치소로 방문 조사를 가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조사 때는 유영하 변호사의 조력을 받았으나, 현재는 변호인단이 모두 사임한 상태여서 홀로 조사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검찰은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으로부터 매월 5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는 현기환 전 정무수석에게도 지난주 소환 통보를 했지만, 현 전 수석이 응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구치소에 수감 중인 현 전 수석이 계속 불응할 경우 강제구인한다는 방침이다. 현 전 수석의 전임으로 역시 국정원 돈을 수수한 조윤선 전 수석의 소환도 임박한 상태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