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은 죄?”…캐나다인이 당한 일본의 ‘남성육아 괴롭힘’

입력 2017-11-13 15:56

일본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하거나 희망하는 남성을 직장에서 왕따 시키는 ‘파타니티 괴롭힘’(부성 괴롭힘·Paternity Harassment)을 당한 캐나다 남성이 있다. 그는 “일본인보다 일본인스럽게 행동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곳의 모든 규칙을 지켜왔다”며 “하지만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 미츠비시 UFJ 모건 스탠리 증권에서 기관투자자 영업부서 이사로 있는 글렌 우드(47)씨가 겪은 ‘부성 괴롭힘’에 대해 버즈피드재팬이 11일(현지시간) 전했다.

◇똑같은 일을 당할 줄은…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는 캐나다 국적의 글렌씨는 30년 전에 일본에 왔다. 미국 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한 뒤 금융업계에 발을 들였고, 2012년부터 현재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일본에 살면서 불편함을 느낀 적이 거의 없다. 장시간 노동이라는 사회문제가 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했다. 특별히 괴롭힘을 당하지도 않았다.

임신 중이거나 육아휴직에서 복귀한 여성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대해 모르진 않았다. “임신했다”는 말이 나오면 남자 상사들의 태도는 급변했다. 글렌씨는 “굉장히 우수한 여성에게도 ‘전력 외 통고’를 했다”고 말했다. 남자만 있던 회의에서 한 간부는 “쟤는 끝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글렌씨는 이를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입밖에 내진 않았다. “직장에서 왕따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도 똑같은 일을 당할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사진=버즈피드재팬 웹사이트 캡처

◇육아 휴직 가겠다에 “없어” 일축


그러다 2015년 가을, 글렌씨는 아이의 임신 소식을 들었다. 일 때문에 네팔에 살고 있는 파트너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였다. 글렌씨는 출산일에 맞춰 네팔에 가려고 회사에 상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상사는 “그런 제도는 없다”며 일축했다.

글렌씨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글렌씨는 육아휴직 제도에 대해서 알게 됐다. 그는 “헬로 워크(공공직업안내소)에 문의해 육아휴직이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글렌씨는 인사팀에 육아휴직제도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얻을 수 없었다. ‘모자수첩’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에선 임신을 하면 구약소(한국의 구청 등에 해당)에 신고를 한 뒤 모자수첩을 받도록 돼있다. 하지만 출산하는 곳은 네팔이고, 글렌씨가 태어난 캐나다에도 모자수첩은 없다. 글렌씨는 대안으로 DNA 검사를 통해 부자 감정 증명서를 제출하려 했지만, 이는 출산 후에나 가능했다.

◇산모와 태아의 생명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결국 글렌씨는 그해 10월 아들 알렉산더군이 태어났을 때 일본에 있었다. 휴직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예정일보다 6주 빠른 출산이었다. 주치의에게서 산모와 태아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연락을 받은 글렌씨는 즉시 상사에게 네팔로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상사가) 몇 가지 업무가 끝날 때까지는 갈 수 없다고 했다”며 “2~3일 회사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글렌씨는 “아들이 죽으면 누가 책임을 질 거냐”고 따졌지만 “괜찮아. 병원에서 치료를 하니까”라는 상사의 냉담한 반응만 돌아왔다.

하지만 네팔에선 ‘당장 오라’는 전화가 계속해서 왔다. 글렌씨는 결국 회사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네팔에 갔다. 회사는 결근 처리했다. 글렌씨는 그렇게 아들과 뒤늦은 만남을 가졌다. 글렌씨는 “첫 아이를 보고 눈물이 났다”며 “태어날 때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했다”고 말했다.

사진=버즈피드재팬 웹사이트 캡처

◇회사에 복귀했고, 따돌림을 당했다


이후 글렌씨는 현지 캐나다 대사관에서 DNA 감정서를 의뢰해 그해 12월 3일 육아휴직을 취득했다. 하지만 결근 처리는 그대로였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글렌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3개월 뒤 직장에 복귀한뒤 그는 왕따를 당했다. 미팅에는 일절 부르지 않았고 상사는 메일이나 전화를 잇따라 무시했다. 육아휴직 전에 맡았던 업무에서도 배제됐다. 반년 후에는 조직표에서 이름도 빠졌다.

글렌씨는 수차례 개선을 호소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글렌씨는 우울증에 빠져 2016년 말 휴직을 신청했다. 그는 “마치 아이를 가진 게 범죄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괴로웠다”고 말했다.

그는 반년간 요양 뒤 원직 복귀를 신청했다. 하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복직 가능’이라는 진단서가 나왔음에도 2017년 10월 18일 회사 측은 글렌씨에게 무급 휴직 명령을 내렸다. 글렌씨는 부당함을 호소하며 도쿄 지방법원에 지위 보전 및 임금 지급 가처분을 제기했다.


◇아빠는 돌아가지 못하고, 엄마는 그만둬야 하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육아휴직은 근로자에게 보장된 권리다. 우리나라도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이를 보장하고 있다. 사업주는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할 수 없고, 육아휴직을 썼다는 이유로 직무상의 불이익을 주거나 해고하는 것도 금지된다. 이는 산모의 배우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남녀 근로자에게 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사용하긴 어렵다. 특히 남성 근로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육아휴직 취득율은 2016년 기준 여성 81.8%, 남성 3.16%다. 남성들은 극히 일부만이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글렌씨가 당한 ‘부성 괴롭힘’과도 무관하지 않다. 글렌씨는 이 배경에 회사를 가정보다 우선시하는 관행과 육아에 대한 몰이해가 있다고 봤다. 그는 “상사들은 모두 좋은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라며 “일류 기업에 취직한 뒤 전업 주부인 아내에게 가사와 육아를 맡긴 뒤 자신은 회사에서 군인처럼 일해온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빠는 (육아휴직 후에는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고, 엄마는 직장을 그만두지 않을 수 없다”며 “일본에서는 당연한 일처럼 됐다”고 말했다.

사진=버즈피드재팬 웹사이트 캡처

◇내 아이는 이런 일을 겪지 않길


글렌씨는 남성의 육아휴직을 못마땅해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본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 본다.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대비가 늦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화가 진행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일본 기업이 뒤처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선 모두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경력을 의식하면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일하는 방식 개혁 등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현실과의 격차가 너무 크다. 이런 현실이 계속되는 한 일본 기업은 세계에서 뒤처질 것”이라고 말했다.

글렌씨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글렌씨의 소식에 세간에 전해지면서 그는 수많은 격려 메일을 받았다. 대다수가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차마 목소리 내지는 못한 부모들이었다. 글렌씨는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나는 따돌림을 당할 각오로 목소리를 냈다. 사회는 큰 배와 같으니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변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렌씨는 아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린이는 미래 그 자체다. 미래가 조금이라도 잘 되길 바란다. 아이들이 컸을 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