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낙서’하러 한국까지 왔을까… ‘원정 그라피티’ 영국인 2명 실형

입력 2017-11-13 15:20
지하철 6호선 전동차에 그려진 그라피티=서울교통공사 제공

영국에서 한국까지 날아와 지하철에 대형 ‘그라피티(graffiti)’를 그린 영국인 형제가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이들은 1호선과 6호선 전동차에 ‘SMT’란 문구를 높이 1m, 길이 12m 크기로 그려 넣었다. SMT는 2011년부터 영국에서 활동한 유명 그라피티 조직으로 확인됐다. 형제는 이미 영국 현지에서 54차례 그라피티를 그려 각각 12개월 ,14개월을 복역했다. 이번에는 고향에서 무려 8700㎞ 떨어진 타국에서 징역형을 살게 됐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항소1부(김경란 부장판사)는 공동주거침입·공동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영국인 A씨(25)와 B씨(23) 형제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 7월11일과 12일, 양일에 걸쳐 서울 군자차량사업소와 신내차량업소에 몰래 들어가 전동차에 ‘SMT’라는 문자를 남겼다. 범행 전날 입국해 3일 뒤인 13일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고 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A씨와 B씨는 한국에 여행 목적으로 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죄질이 가볍지 않은 데다 이 사건으로 인한 피해가 복구되지 않았다”며 “피고인들이 영국에서 같은 범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의 형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1심 판결을 유지했다.

형제가 속한 SMT 구성원들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영국 전역에서 130여 차례에 걸쳐 전동차 등에 그라피티를 그렸다. 결국 철도회사에 30만 파운드(약 4억4천280만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7명의 구성원 전원이 실형 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난해 대구도시철도 전동차에서 발견된 그라피티

지하철 역사와 전동차에 몰래 그라피티를 남기는 것을 ‘트레인 바밍’(Train bombing)이라고 한다. 아침에 그림을 발견한 사람들이 폭발을 본 것처럼 깜짝 놀란다는 의미다. 보통 작가나 조직의 이름을 낙관처럼 그려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라피티는 접근하기 힘든 곳일수록 가치를 높게 친다. 처벌을 무릅쓰고 지하철 그라피티를 남기는 이유다. 전동차가 달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을 알릴 수 있다는 점 역시 그라피티 작가들에겐 매력적인 요소다.

우리나라 지하철은 2012년부터 외국인들의 불법 그라피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4월에는 호주인 C씨(22)가 서울 수서 차량기지의 철조망을 끊고 무단 침입해 전동차에 ‘TONGA’라는 낙서를 남긴 혐의로 구속됐다. 이 남성은 경찰에 “한국에 놀러왔다가 긴장감을 느끼기 위해 금지구역에 몰래 들어가 낙서했다”고 진술했다. 2015년에는 서울과 경기 일대 지하철역과 전동차에 무려 22차례 그라피티를 남긴 다국적 일당 3명이 붙잡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일까. 그라피티 작가들은 유튜브 등을 이용해 자신의 행위를 과시하고 그라피티 범죄를 부추긴다. 한국 지하철은 그라피티를 찾을 수 없는 ‘깨끗한 캔버스’나 다름없다. 이미 그라피티가 포화 상태인 외국에 비해 국내 지하철 그라피티는 흔치 않아 외국 작가들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다는 추측이 나온다.

지하철 그라피티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경찰은 2015년부터 전동차에 남긴 그라피티에 형법상 재물손괴 및 건조물침입죄를 적용하기로 했다. 재물손괴로 입건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 벌금, 건조물침입은 3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을 받게 된다. 또 2명 이상이 함께 낙서를 하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의 공동재물손괴죄가 적용된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