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후보가 나란히 당대표로 정치 전면에 복귀했다. 바른정당은 13일 전당대회에서 유승민 의원을 신임 당대표로 선출했다. 유 대표는 56.6%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로써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함께 야당을 이끌게 됐다. 지난 대선의 경쟁 구도가 문재인정권 국회에서 재현됐다.
◇ 유승민 “강철 같은 의지로 버티자”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당대표직 수락연설을 통해 “원내교섭단체가 무너져 춥고 배고픈 겨울이 시작됐다"며 "똘똘 뭉쳐 체온을 나누면서 강철 같은 의지로 이 죽음의 계곡을 건너자"고 호소했다. 유 데표는 "18년 전 저는 보수당 당원이 됐고, 여러분은 오늘 저를 가짜 보수당이 아닌 진짜 보수당의 대표로 뽑아주셨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홍준표 체제의 자유한국당을 ‘가짜 보수’ ‘썩은 보수’라고 규정했다. “지난 1월 우리는 썩은 보수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며 어렵지만 새로운 보수, 개혁보수를 해보겠다고 온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시작했다. 하지만 그 사이 세상은 바뀐 게 없고,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국민이 보시기에 개혁보수는 정말 다르구나, 바른정당은 정말 다르구나 하실 만큼 한 게 없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창당 후) 불과 열 달도 안 됐는데 22명이 떠났다. 도저히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버리고 떠나온 그 곳(한국당)으로 돌아갔다"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뜻한 곳, 편한 길을 찾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최소한 자기가 한 말은 지켜야 하는 게 정치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 앞에 맹세한다. 바른정당을 지키고 개혁보수의 창당정신, 그 뜻과 가치를 지키겠다"며 "철저히 반성해서 낡고 부패한 기득권 보수, 철학도 정책도 없는 무능한 보수의 과거를 반성하고 진정한 보수의 새 길을 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 劉 “중도보수 통합”… 국민의당 “정책연대 기대”
유승민 대표는 자유한국당과의 차별화를 강조하면서도 ‘중도보수 통합’을 역설했다. “12월 중순까지 성과를 내도록 노력하자는 합의가 있는 만큼 진지하게 노력해보겠다”고 말했다. 이 말은 국민의당을 향한 것이었다.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당과는 (중도보수 통합에 대해) 교감된 것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국민의당의 경우 국민통합포럼을 통해 국민의당 의원 중 우리와 연대, 협력, 통합을 원하는 분들과 상당히 대화를 많이 해왔고 저도 다 듣고 있다. 원칙 있는 통합, 명분 있는 통합이라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또 "햇볕 정책, 지역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를 보고 얘기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얘기한 것"이라며 "안보 문제에 대해 인식과 해법을 같이 생각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을 중시한 것이고, 지역 문제는 우리 정치권의 오래된 과제이고, 어느 당과 연대 내지 통합 얘기를 할 때는 당연히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국민의당도 유승민 대표 당선을 축하하며 ‘정책연대’를 언급했다. 김철근 국민의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정책연대의 합의정신이 더욱 더 발전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최근 바른정당 의원들의 탈당으로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바른정당 당원들의 압도적인 당심을 바탕으로 굳건하게 헤쳐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 ‘백의종군→당대표’ 직행 洪·安·劉… 미래는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대표는 모두 ‘대선 패배 → 백의종군 → 당대표’의 수순을 밟아 전면에 나섰다. 제일 먼저 변신한 것은 홍 대표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악재가 오히려 재기의 계기가 됐다. 악조건 속에 치른 대선에서 24% 득표율로 2위를 차지하며 ‘보수 재건’이란 기치를 내걸 토대를 마련했다. 지난 7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권을 잡았다.
안 대표는 대선 패배 직후 ‘제보 조작' 파문으로 위기를 겪었다. 백의종군과 은인자중의 시간이 길어지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지난 8월 전당대회에 전격 출마했다. 그의 출마를 반대하는 당내 목소리가 컸지만 결국 당선됐고, 이후 계속되는 갈등의 골을 헤쳐 가는 중이다.
유 대표는 대선 패배 후 일선에서 떠나 있었지만 한국당과의 통합론이 불거지며 당이 흔들리자 총대를 멨다. 유 대표와 함께 당내 한 축을 담당했던 김무성 의원이 '통합파' 수장으로서 역할을 시작하자 '자강파'의 구심점으로 유 대표가 나섰다.
정치 전면에 복귀한 이들이 처한 현실은 간단치 않다. 홍 대표의 경우 박 전 대통령 출당 과정에서 본격화된 친박 의원들과 갈등을 겪고 있다. 바른정당 통합파 의원 8명을 재입당시키는 과정에서 갈등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당내 갈등 해소, 친박 청산, 보수 통합을 이뤄내야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상황이다.
안 대표는 취임 후 '안철수가 변했다'라는 의미의 '변철수'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존재감을 키우고 분위기를 살려 나갔으나 당의 노선을 놓고 호남 중진들과 극심한 갈등을 빚으면서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외연을 대폭 확장하겠다며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호남계 의원들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혔고, 그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유 대표도 당장 전당대회를 치르는 과정에서 발생한 소속 의원들의 탈당 사태와 그로 인한 교섭단체 붕괴에 따른 후폭풍을 수습해야 하는 게 1차적 과제다. 여기에 현재 당에 남은 잔류파가 '한 달 안에 중도보수 통합 논의를 진전시켜 나간다'며 갈등을 봉합해 놓은 상태라 기한내에 구체적인 성과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언제든 추가 탈당 가능성 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