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으로 시작된 미·일, 한·미, 미·중, 한·중, 중·일 정상회담이 모두 종료됐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관련국 정상들은 강한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자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향한 거친 발언을 자제하고, 북한도 60일 가까이 도발을 감행하지 않으면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 ‘말’ 자제한 트럼프… 정부 “北도 비난 자제했다” 평가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 일본 도쿄도 요코타 미군기지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아시아 순방을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아시아 순방과 관련해 “최대 의제는 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밝히며 북핵 문제 해결을 1순위로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화염과 분노’ ‘완전 파괴’ 등 과거와 같은 과격·돌출 발언은 자제하면서 북핵 문제를 규탄하고 국제사회의 협력을 당부하는 데 집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방한 중 국회 연설에서 북핵 포기 시 출구를 마련할 뜻도 밝혔다. 그는 “당신(김정은)이 지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범죄에도 우리는 나은 미래를 위한 길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 이것의 출발은 공격을 종식시키고 탄도미사일 개발을 중지하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총체적인 비핵화”라고 말했다.
동시에 미국 정부에선 대북 대화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이 계속 나왔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북한과 2~3개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며 “서로 첫 대화를 할 때가 됐다고 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12일 트위터에 “내가 그(김정은)에게 ‘키 작고 뚱뚱하다’고 놀린 적이 결코 없는데 왜 그는 나를 ‘늙었다’고 모욕하는 걸까”라며 불만을 드러내면서도 “어쩔 수 없지. 나는 그의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수 있다”고 말해 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대결 행각’으로 비난했지만, 지난 9월 15일 이후 59일째 도발을 자제하면서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이 도발을 중단한 배경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있다. 한반도 주변 항공모함 배치 등 미국의 강한 압박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통일부는 13일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 대해 북한이 비난을 자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이전과 비교해 형식과 내용 면에서 비교적 절제된 것으로 평가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백 대변인은 "2014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방한 때 북한은 출국 다음 날부터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성명,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 외무성 대변인 담화 등을 통해 즉각적이고 강도 높은 비난 공세를 했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 출국 3일 후에 외무성 대변인 담화로 입장을 표명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내용 면에서도 지난 9월 김정은의 성명과 비교해 군사적 위협이 없고 인신 비방도 감소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무모한 도발과 위협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 올바른 선택을 하면 밝은 미래가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밝힌다"고 강조했다.
◇ 움직이는 中, 北에 고위급 대표단 파견할 듯
북·미가 서로를 향한 말폭탄을 자제하는 가운데, 중국도 제19차 당대회 결과를 설명할 고위급 대표단을 북한에 파견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중국의 대북제재 참여로 북·중 관계가 냉각기로 접어들었지만, 중국 당대회를 계기로 축전과 답전을 주고받으며 경색된 북·중 관계도 완화됐다. 여기에 한·미·일과 각각 정상회담 마친 시진핑 주석이 북한에 대화 메시지를 보내는 등 모종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 조지프 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14일 한국을 방문해 이도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날 예정이다. 윤 특별대표는 지난달 30일 미국외교협회(CFR) 행사에서 “북한이 약 60일간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면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완화되는 조짐이 보이면서 북한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여부도 관심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평창 올림픽 참가를 거듭 요청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 경기장에서 열린 제18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전체회의 개회사에서도 “평창의 문, 평화의 길은 북한에도 열려 있다”며 “북한이 평창을 향해 내딛는 한걸음은 수백발 미사일로도 얻을 수 없는 평화를 향한 큰 진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남과 북이 올림픽을 통해 세계인과 만나고 화합한다면 강원 평창군은 이름 그대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창이 움트는 화합의 장소로 거듭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핵 대화의 진전으로 북한에 평창올림픽에 참가하게 된다면 이명박정부 이후 사실상 단절된 남북관계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이 때문에 평창올림픽 개막까지 남은 약 3개월이 ‘북핵 골든타임’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란 시각도 여전히 많다. 우리 정부 역시 북한이 핵 기술 완성 단계에서 추가 도발을 감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