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립대 총장 집단 반발에… ‘입학금 폐지’ 무산 위기

입력 2017-11-12 22:56
“학생에게 줄 국가장학금
대학에 나눠달라” 요구도

교육부는 눈치보기 급급
내년 재정지원 참여 조건에
입학금 폐지 연계 결정 못해

지난 2일 서울 중구 한국장학재단 서울사무소에서 열린 '사립대 입학금 제도 개선을 위한 대학, 학생, 정부 간 협의체 1차 회의'. 뉴시스

사립대학 총장들이 입학금을 폐지하려면 학생에게 돌아갈 국가장학금을 떼어 대학에 달라고 요구했다. 모든 사립대에 국고 1000억원을 조건 없이 나눠달라고도 했다. 부실대학에도 국고를 투입하란 얘기다. 그러면서 교육부의 입학금 관련 조사는 집단 거부키로 했다. 교육부는 사립대 눈치를 살피며 우물쭈물하고 있다. 사립대 입학금 폐지 정책이 무산 위기에 놓였다.

12일 교육부에 따르면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는 최근 ‘교육부 학부 입학금 단계적 감축 계획 조사 의견 유보 건’이란 공문을 교육부에 보내왔다. 공문에는 “입학금 단계적 감축계획 조사는 3자협의체(교육부 사총협 학생대표)에서 논의 중이므로… 사립대에서 교육부로의 통보는 유예토록 공지했다”고 밝혔다.

사총협이 정부의 입학금 조사에 제동을 거는 내용이다. 개별 사립대에는 교육부 조사에 응하지 말 것을, 교육부에는 이런 결정 사항을 통보한 것이다. 교육부로선 굴욕이다. 교육부는 지난 1일 전국 사립대에 입학금을 감축하는 방안을 마련해 13일까지 제출토록 요구했다. 교육부는 입학금의 20% 정도만 실제 입학 업무에 쓰인다고 본다. 나머지 80%를 언제 어떻게 줄일지 계획을 내도록 한 것이다. 교육부는 대학들의 계획을 받아보고 이를 토대로 국가장학금Ⅱ 유형 등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었다.

사립대의 집단 반발 등으로 지난 9일 열린 ‘대학, 학생, 정부 간 입학금 제도개선 협의체’ 회의도 파행됐다. 당초 교육부는 이날 회의에서 입학금 축소·폐지 틀을 확정한 뒤 13일쯤 이를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어그러졌다.

사총협은 이날 회의에서 새로운 입학금 폐지 조건을 내걸었다. 국가장학금Ⅱ 유형 가운데 일정 규모를 떼어내 대학 재정에 투입하라는 것이다. 국가장학금은 학생 소득에 따라 지급되는 Ⅰ유형과 정부가 대학의 학비 경감 노력에 대응해 지급하는 Ⅱ유형으로 구분된다. 대학이 학비 경감을 위해 노력해도 국가장학금은 학생에게 돌아가는 혜택이므로 대학 재정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논리다.


정부재정지원사업 예산 가운데 1000억원가량을 모든 사립대에 구분 없이 지원해달라는 요구 조건도 제시했다. 정부 재정지원사업에선 모든 대학이 혜택을 보기 어렵지만 입학금 폐지는 모든 사립대 재정에 충격을 준다. 따라서 정부재정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대학들도 ‘남는 게 있어야 동참한다’는 게 사총협의 논리다. 교육부 관계자는 “두 방안 다 수용 불가하다”고 선을 그었다.

교육부는 그러나 사립대의 협조를 이끌어낼 방안을 정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다. 교육부는 5∼7년 사이에 입학금을 폐지하려던 기존 방침이 느슨하다는 비판에 따라 4년제 대학은 3년내, 전문대는 5년내로 폐지 목표 시점을 다시 설정했다. 사립대들이 이를 따르려면 과거보다 강력한 당근책이나 채찍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내년 재정지원사업 참여 조건으로 입학금 폐지 여부를 내걸지조차 결정하지 못했다. 사립대들이 정부 정책과 재정 지원을 연계하는 것에 부정적이란 이유에서다. 입학금은 결국 돈 문제이므로 재정 지원과 강하게 연계하지 않으면 입학금 폐지 논의가 탄력을 받기 어렵다. 교육부 내부에선 입학에 드는 비용으로 인정되는 비율을 현재 20%에서 30% 수준으로 높여주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율이 올라간 만큼 사립대는 이득, 대학 신입생은 손해를 보게 되는 방안이다. 학생들은 “20%도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