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난데없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연주회를 보러 온 사람들은 두리번거리거나 얼굴을 찌푸리며 저마다 불쾌감을 드러냈고, 비명을 지른 당사자는 다른 누군가와 함께 서둘러 자리를 떠야 했다.
소리를 지른 사람은 발달 장애를 가진 어린 아이였다. 그 부모는 죄인마냥 아이의 입을 막고 도망치듯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이 사건을 두고 인터넷에선 작은 논쟁이 벌어졌다. “아이 하나 때문에 조용히 음악을 들으려는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어서야 되겠냐” “지적장애인들도 문화 생활을 즐길 권리가 있다” 등 두 부류로 나뉘었다.
문화평론가 노승림 씨와 서울시립교향단은 후자에 주목했다. 노씨가 국민일보에 기고한 칼럼(8월 21일자 16면. )을 읽은 서울시향의 곽범석 문화사업팀 차장은 지휘자 최수열 씨와 함께 발달장애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준비했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공연이 10일 종로구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열린 ‘클래식 스페이스 Ⅱ―함께!’다.
곽 차장은 ‘함께!’를 기획하며 다른 공연보다 훨씬 많은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안전과 밝은 분위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며 “발달장애 아이들과 보호자분들이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서울특별시 어린이병원이나 협회에서 근무하는 전문가의 조언을 많이 참고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기자가 공연을 관람하는 약 한 시간 동안, 곳곳에서 관람객을 위한 배려를 찾아볼 수 있었다. 공간이 어두워지는 것을 무서워할 아이들을 위해 실내 조명을 오히려 밝게 한 점, 좌석을 스무 개 남짓한 원형 테이블들에 배치해 보호자가 아이를 더 잘 돌볼 수 있게 한 점, 마이크를 쓰면서도 크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천천히 공연에 대해 설명하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처음엔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아이들을 제지시키던 보호자들은 점점 편하게 공연을 감상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씨가 계속해서 “여러분, 아이들을 방임해주세요!” “저희는 아이들이 공연을 즐기며 소리도 지르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길 원하니까, 애들 마음껏 하게 두세요!”라며 보호자들을 안심시키는 부분도 인상 깊었다.
프로그램 노트에서도 선곡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엘가의 ‘사랑의 인사’, 가르델의 ‘포르 우나 카베자’,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중 1악장’ 등 사람들에게 친숙한 곡조가 든 곡을 위주로 선곡해 클래식을 어렵고 딱딱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했다. 또 브로슈어엔 각각의 곡에 대한 설명을 쉽고 자세히 써 놔 보호자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곡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했다.
앙코르를 포함해 7곡을 연주하는 동안, ‘사랑의 인사’와 ‘포르 우나 카베자’에서는 특별한 손님이 함께 했다. 이성준(서울 정문학교)군과 곽동규(서울 언북중학교)군이었다. 각각 첼로와 바이올린이 특기인 두 학생은 관람객들과 마찬가지로 발달장애를 갖고 있다. 하지만 전문 첼리스트, 바이올리니스트 못지않게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성준군은 관람객에게 수줍은 ‘사랑의 인사’를 건네듯 섬세한 연주를, 동규군은 영화 ‘여인의 향기’의 알 파치노가 탱고를 추듯 거침없는 연주를 선보였다. 중간에 살짝 실수가 있었지만 살풋 웃으며 진지하게 곡을 이어나가는 모습 역시 프로연주자와 견줄만했다.
두 학생의 연주가 끝났을 때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들렸다. “브라보!”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연주를 잘 끝낸 두 사람에게 보내는 환호이자,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격려처럼 힘찬 박수였다.
동규군은 연주를 끝내며 “음악이 왜 좋으냐”는 노씨의 질문에 “소리가 나니까 음악이 좋다”고 답했다. 많은 어른들이 이 대답에 소리 내 감탄했다. 동규군의 순수한 대답은 사소한 것들도 이모저모 따지며 살던 어른들을 반성하게 했다. 이번 공연에서 지휘를 맡았던 최수열 씨는 “좋은 소리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음악의 본질인데, 그걸 잊고 살아왔던 것 같다”며 “저희가 도움을 드리려고 기획한 음악회인데 오히려 연주자들이 힐링을 받은 시간이었다”고 답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소파 방정환 선생이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고 아동문화운동단체 ‘색동회’를 조직하는 등 어린이들의 복지와 지위향상을 위해 노력한 곳이다. 문화예술계에서 소비자로 인정받지 못하던 발달장애 아동들이, 이곳에서 오롯이 자신들만을 위한 공연을 즐길 수 있던 것도 유의미한 일이다. 공연을 관람했던 학부모 A씨는 “여기 왔던 아이들은 이런 공연(클래식)을 보기가 어려운데, 아이들을 위해 주최 측에서 많은 배려를 해주셔서 좋았다”며 “클래식이 어렵고, 격식 있어야 한다는 편견을 떠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것 같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평생 관람한 공연 중에서 오늘만큼 시끄럽고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관람객과 연주자들 모두가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공연을 즐기는 모습 역시 본 적이 없다. TPO를 맞추며 억지로 앉아 있던 공연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재미있는, 그리고 따뜻한 경험이었다.
우승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