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를 조선에, 조선을 성서 위에”…종교개혁자로 살다 간 인물, 김교신

입력 2017-11-12 01:09 수정 2017-11-12 01:59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만열)가 '김교신과 종교개혁'을 주제로 11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교회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발표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상익 우석대 교수, 전인수 KC대 교수, 이진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양현혜 이화여대 교수. 구자창 기자

일제강점기 당시 종교개혁자를 방불케 한 삶을 살다 간 신앙인 김교신(1901~1945)의 기독교 사상과 종교개혁의 관계를 연구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회장 이만열)는 11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교회에서 ‘김교신과 종교개혁’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마르틴 루터에 집중한 앞선 종교개혁 500주년 행사들과 달리 크게 언급되지 않았던 김교신, 존 밀턴, 우치무라 간조 등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가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김교신은 기독교 신앙의 근거를 눈에 보이는 외형적 교회나 관습이 아닌 성경에서 찾는 무교회주의를 주창한 사상가였다.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근거는 성경이며 교회는 기독교를 담아내는 형식”이라고 말한 일본의 무교회주의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1927년부터 양정중 경기중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1942년까지 월간 ‘성서조선’을 펴냈다. 1942년 조선 민족의 소생을 암시하는 ‘조와(弔蛙)’라는 글로 옥고를 치렀다. 2010년에는 항일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포장에 추서됐다.

국민일보DB

이날 ‘종교개혁자 김교신과 밀턴’을 주제로 발표한 박상익 우석대 교수는 영국의 작가이자 청교도 사상가인 밀턴과 김교신을 “교권주의의 속박으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추구한 종교개혁적 공통 토대를 갖고 있는 인물”로 분석했다.

밀턴은 1640년대 초 영국에서 일어난 청교도혁명에 동참해 성공회의 권위적인 주교제를 타도하는 데 일조했다. 그는 하지만 혁명 이후 청교도들이 장로교를 영국 국교로 만들려는 시도를 보고 실망한다. 결국 밀턴은 “성공회의 주교가 장로교회의 장로로 대체됐을 뿐”이라며 장로교의 교권주의를 비판하게 된다.

박 교수는 “밀턴은 모든 평신도가 스스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앙의 자유를 주장했다”며 “그의 저서 아레오파지티카는 흔히 언론자유의 경전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종교개혁의 완성을 위해 출판과 표현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강변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김교신 역시 밀턴처럼 교권주의를 경계했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김교신은 성서조선 1932년 11월호에서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은 신도 사이의 종파심”이라며 “같은 복음주의인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등이 서로 공격과 수비의 전략에 몰두하는 것은 무슨 심사인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어 양현혜 이화여대 교수는 김교신의 신앙 은사였던 우치무라의 루터 이해에 대해 발표했다. 우치무라는 저서 ‘루터 생애 강연’에서 “나는 20세기 일본의 작은 루터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적을 정도로 루터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양 교수는 “우치무라는 루터를 통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그 외에 다른 모든 것에는 무릎을 꿇지 않는 ‘복음에 의거한 자유와 독립’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우치무라 간조. 국민일보DB

양 교수는 우치무라가 루터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지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우치무라는 루터가 종교개혁 이후 성직제도와 세례 성찬을 유지하면서 당시 가톨릭교회의 제도로부터 완전히 단절하지 못했다고 봤다. 그가 볼 때 세례와 성찬을 구원의 필수 요소로 두면서 이를 성직자만 집행할 수 있다고 보는 건 여전히 성직중심주의의 잔재를 지우지 못한 것이었다. 양 교수는 “우치무라는 평신도와 성직자를 구별하는 교회의 계급주의에 반대했다”면서 “성찬과 세례 같은 의식이 영혼을 구원하지 않는다고 봤다”고 전했다.

김훈경(안산한길교회) 목사는 김교신이 성서조선에 기고한 주기도문 연구와 성경주해가 루터의 주기도문 해설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김 목사는 “김교신은 성서조선에 연재한 성경해석을 통해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을 대변했다”면서 “조선인들이 자주적인 신앙을 갖도록 힘썼다”고 평가했다.

앞서 김교신의 넷째 딸 김정옥 여사는 유족대표로 나서 “아버지께서 성서조선을 만드실 때 곁에 앉아 봉투에 풀칠을 하면서 독자들에게 무사히 전달되길 기원했다”며 “당시 아버지는 조선인 한 사람이라도 더 성서적 백성으로 빚으려는 수고를 하고 계셨다”고 말했다.

기념사업회는 2014년 11월 창립 이후 김교신의 저작물을 정리해 후세에 전수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김교신의 생존 제자 구본술 한국실명예방재단 명예회장 등 80여명이 참석해 학술대회와 함께 사단법인 창립총회도 열렸다. 박찬규 기념사업회 이사(도서출판 익두스 대표)는 “1982년 발간됐던 성서조선 영인본을 내년 5월 재발행할 계획이며, 2020년부터 김교신 전집을 펴내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