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봉합 이후 공연계 첫 한중 교류…항저우에서 열린 베세토 연극제

입력 2017-11-11 12:01
중국 항저우 저장음악학원 내 공연장에서 선보인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의 ‘전설의 리틀 농구단’. 이 작품은 베세토연극제가 처음으로 초청한 뮤지컬이다. 사진작가 김솔 제공

올해 24회를 맞는 베세토 연극제가 4~10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렸다. 한국 중국 일본의 연극 교류를 위해 1994년 설립된 베세토 연극제는 매년 번갈아가며 열린다. 베이징(Be), 서울(Se), 도쿄(To) 등 3국 수도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었지만 수년전부터 세 도시 외에 여러 지역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 축제에는 주최국인 중국 5편, 한국 2편, 일본 2편, 한중일 공동제작 1편 등 모두 10편이 참가했다. 한국과 일본이 현대적인 작품을 가지고 나온데 비해 중국은 월극(항저우), 곤극(수저우), 민극(푸저우) 등 전통공연을 주로 선보였다. 한국 참가작은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과 연극 ‘손님들’의 2편이다. 그리고 한국 극단 걸판이 중국베이징경극원, 일본 극단 백경사와 공동제작한 연극 ‘맥베드’가 지난해 일본에 이어 올해 다시 공연됐다.

 다소 만족스럽지 않았던 공연장 환경, 번역과 통역의 문제 등 작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베세토 연극제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베세토 연극제 한국위원회 관계자들은 “이번 축제를 준비하는 동안 한국의 참석 문제가 확실히 결정되지 않아 한동안 마음을 졸였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과 중국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갈등 때문에 중국측으로부터 답변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세토 연극제가 한국과 중국 외에 일본까지 참석하는 다자간 행사라는 점에서 예정대로 열리는 것으로 결정됐다. 마침 지난달 31일 한중 사드 합의가 이뤄지면서 이번 축제는 한국 공연이 오랜만에 중국 관객과 직접 만나는 장이 됐다. 그동안 한국 예술가들이 나오는 공연과 전시, 콘서트 등이 ‘한한령’ 때문에 취소됐었다. 사드 봉합 후 한중 문화행사로는 지난 2일 상하이 아트페어에 한국관이 만들어진데 이어 베세토 연극제가 두 번째다. 그래서인지 사드 합의 이후 다시 재개된 한국과의 교류를 취재하러 온 CCTV,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항저우 서계 천당 예술극장에서 공연된 한국 극단 내친김에 프로젝트의 ‘손님들’을 보러온 관객들. 중국 관객들은 공연이 끝난 후 연출가 김정, 극작가 고연옥과의 대화 시간에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극작가 고연옥 페이스북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이 제작한 ‘전설의 리틀 농구단’(연출 오세혁)과 프로젝트 내친김에의 ‘손님들’(작 고연옥‧연출 김정)은 중국 관객의 높은 주목을 받았다. 두 공연 모두 관객과의 대화가 정해진 시간을 넘길 정도로 활발하게 진행됐다. 중국위원회 이화예 위원은 “ ‘전설의 리틀 농구단’은 베세토 연극제가 초청한 최초의 서구 스타일 음악극, 즉 뮤지컬이다. 한국이 뮤지컬 제작 분야에서 앞서나가고 있다는 것을 중국에서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을 학대하는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소년의 근친 살해라는 무거운 주제를 그린 ‘손님들’의 경우 중국에서는 거의 보기 어려운 작품이어서인지 관객의 질문이 쏟아졌다. 한국에서 이런 스타일의 작품이 인기있냐는 질문에 고연옥 극작가는 “한국에서는 내 작품이 어두워서 그다지 인기가 없다”며 웃음을 터뜨린 뒤 관객에 따라 이 작품을 다층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축제의 부대행사로 개최된 학술 심포지움에서는 연극 교류에 있어서 ‘전통’이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올해 주최측인 중국측 참가자들이 열띤 논쟁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 일찍부터 실험적이고 개인의 삶에 집중한 동시대 연극을 선보이고 있지만 중국의 경우 전통과 현대의 과도기 또는 충돌을 겪는 모습이었다.

 한편 올해 베세토 연극제는 항저우에 있는 예술대학인 저장예술직업학원이 공동 주최로 참여했다. 덕분에 베세토 연극제는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로 다른 때보다 좀더 성황을 이룰 수 있었다. 한국위원회 위원인 김옥란 평론가는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다양한 연극축제가 생기면서 베세토 연극제가 처음 만들어질 때와 비교해 위상이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번에 중국 측에서 대학을 파트너로 손잡으면서 시너지 효과가 많이 나는 것을 보고 한국도 상황은 다르지만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내년 베세토 연극제는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