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청와대에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을 주도한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전직 국정원장들의 뻔뻔한 행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국민 혈세로 배정된 특활비를 청와대에 뇌물로 제공하며 국정원의 위상을 추락시킨 장본인들이 “국정원 강화가 필요한 시점에 큰 상처를 입었다”며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양석조)는 10일 국정원 특활비 상납과 관련해 이병호 전 국정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이 전 원장은 이날 오전 9시16분쯤 검찰에 출석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우리나라의 안보정세가 나날이 위중하다. 국정원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라며 “그런데 최근들어 오히려 국정원이 큰 상처를 입고 흔들리고, 약화되고 있다. 크게 걱정되고,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또 “우리 사회가 이 점에 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며 “국정원 강화를 위해 국민적 성원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 전 원장은 ‘특활비를 청와대에 낸 게 안보 목적이냐’ ‘청와대 여론조사 비용 5억원을 왜 특활비로 냈느냐’ 등 기자들의 질문에는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본인의 주장만 강변했을 뿐 의혹이 제기된 부분에는 입을 닫았다.
2015년 3월 취임한 이 전 원장은 남재준·이병기 전 원장 뒤를 이은 박근혜정부 마지막 국정원장이다. 3명의 전직 국정원장들은 2013년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부터 지난해 7월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질 때까지 매달 5000만~1억원을 청와대에 뇌물로 상납해 국고손실을 초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지난 8일 검찰에 소환된 남 전 원장도 이병호 전 원장과 마찬가지 태도를 보였다. 그는 “국정원 직원들은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이자 최고의 전사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헌신과 희생에 대해 찬사를 받지는 못할망정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담한 현실에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낀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를 방해하고 은폐한 의혹을 받은 국정원 소속 변호사 정모씨와 파견검사였던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가 잇따라 자살한 것을 언급한 발언이었다. 남 전 원장 역시 이 말을 마친 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나’ ‘상납이 원장 판단이었나’ 등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억울하냐’는 질문에 고개만 끄덕였다.
검찰은 이들에 이어 이병기 전 국정원장도 오는 13일 오전 9시30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키로 했다. 이 전 원장은 2014년 7월부터 2015년 3월까지 국정원장으로 재직했고, 이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했다. 검찰은 남 전 원장 시절 매달 5000만원 수준이던 특활비 상납액이 이 전 원장 때 매달 1억원으로 불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경위를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