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중국 방문에서 ‘국빈방문 플러스 α’라는 융숭한 대접을 즐기는 사이 국제사회에선 미국이 중국에 글로벌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토니 블링큰은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기고글에서 시 주석이 트럼프를 성대하게 예우하고 있지만 양국은 매우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유엔, 세계무역기구(WTO)를 업신여기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파리 기후협약, 이란 핵협정 등을 반대하고 아시아와 유럽 내 동맹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시 주석은 기후변화 의제, 유엔, WTO,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리더십을 확대하고 중국 내부적으로도 21세기 글로벌 경제를 장악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에 힘쏟고 있다고 블링큰은 분석했다.
블링큰은 중국이 주요 경제 부문에 대한 해외기업의 투자 제한, 경제불평등 심화, 막대한 부채, 경제성장률 저하, 국영 기업의 저생산성, 환경 오염, 억압적 정치체계 등 여전히 많은 문제를 가진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압도적 대체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중국의 결점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며 “트럼프 주도 아래 미국이 국수주의, 보호주의, 일방주의, 외국인 혐오로 후퇴한다면 중국의 모델이 성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세계는 저절로 조직되는 게 아니다”라며 “미국이 관리하는 세계 질서는 민주주의, 인권, 표현과 결사의 자유, 노동자와 환경·지적 재산권 보호 등 자유로운 가치와 진보적 규범을 향상시켰다”고 했다.
이어 “2차 대전 이후 맡아 온 리더십 책무를 저버린다면 미국의 영역을 다른 이들에게 넘기는 셈”이라며 “그들은 미국이 아닌 자신들의 가치에 따라 세계를 조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시 주석은 누가 그런 역할을 할 지 말하길 꺼리지 않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땅을 내주면 20세기 후반을 규정해 온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비자유주의에 자리를 빼앗기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아태평양 국가들도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미국이 역내 안정성을 잃고 있는 반면 한때 이 지역에서 ‘오만한 불량배’로 여겨지던 중국의 영향력이 대폭 확대됐다는 시선이 많다.
리처드 헤이다리언 필리핀 드라살대학 교수는 AP통신에 “트럼프는 중국보다 훨씬 보호주의적”이라며 “중국이 국제 경제 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기이하고 비현실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인민대학의 스인홍 교수는 중국의 자금과 영향력, 정치적 압력이 아태 지역에 범람하고 있다며, 많은 국가들이 과연 얼마나 중국을 가까이하고 미국에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부 국가는 트럼프의 첫 아시아 순방을 지켜보며 그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고 있다며 “이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 지역에 더 헌신해 주길 바라지만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를 훼손하고 싶어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