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워낙 건강하신 분이니까 치매가 걸릴 거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어요. 설마 우리 엄마가….”
“치매라는 것은 드라마에서 나오면 ‘세상에 저런 사람도 있네, 얼마나 힘들까’ 이렇게 생각했었지 그게 나한테 일어날 거란 건 상상도 못했죠.”
여러분은 가장 소중한 사람이 나에 대한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 있으신가요? 처음엔 다들 가족이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그럴 리 없다고 말이죠. 그러나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 반복되자 무섭고 떨렸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밥 먹으면 ‘혜린이 어디갔냐’ 물어요. ‘학교 갔잖아 엄마’라고 대답하면 ‘아 그래?’ 하다 몇 분 있으면 똑같이 또 물어보는 거에요. 처음엔 (제가) 짜증도 부리고 그랬어요. 그런데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거에요.”
단순 건망증이 아니었습니다. 박성미(48)씨의 엄마가 치매 확정 판결을 받은 건 4년 전입니다. 이후 엄마는 빠르게 다른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사위에 대한 기억도 잃고 이젠 사위를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기저귀를 차고 계신데 새벽에 4시 반에 종이 기저귀를 변기 물에다가 빨고 빨고 빨고 해가지고 솜은 다 뜯어지고…. 남편이 (기저귀를) 휴지통에 버리러 가니까요 변기물 다 묻은 상태로 맨발로 튀어나오면서 ‘아저씨 그거 이리 줘요, 이리 줘요’ 난리가 난거야 사위한테…”
“화장실 휴지통에 소변이나 대변이나 보고 휴지통에 버리잖아요. 그 휴지를요 한 움큼씩 몰래 훔쳐가지고 방으로 가져가는 거에요. ‘엄마 미쳤냐고, 세상에 드러운 거를 세상에’ 난리가 나는 거죠. (어머니는) 그거 안 뺏길려고 붙잡고 나는 뺏으려고 그러고 실랑이가 벌어지는 거지.”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 나에 대한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면 당신은 어떠실 것 같나요. 정재진(62)씨는 가장 소중한 아내(58)가 처음 치매 증상을 보인 2009년부터 아내와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래도 아직 기억이 남아있을 때 그는 아내와 여행을 떠났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늦게까지 같이 가야할 사람이니까 즐거운 추억을 위해서 중국으로 여행을 갔었어요. (그러다가) 애기 엄마 상태가 날로 날로 안 좋아지니까 직장 그만두고 애기 엄마만 케어했죠.”
재진씨 아내가 처음 치매 증상을 보인 건 아내가 쉰 살 때입니다. 치매가 왔을 거라곤 상상하기 힘든 나이였죠. 아내는 버스를 타고 늘 같은 길을 다녔는데 어느 날부터 엉뚱한데서 내리더란 겁니다. 아내의 치매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소중한 사람이지만 함께 살아가는 게 너무 버겁습니다.
“너무 힘들 때는 동반자살, 그거 생각할 때도 많이 있어요. 내가 늙은 노모만 없다면 그런 생각을 가졌을 거에요. 늙은 노모도 있고 그런데 내가 그러면 안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양원에 보낼 수가 없습니다. 자기만큼 아내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자기가 끝까지 책임질 거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아내와 시골에 내려가 작은 오막살이에서 살면서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고 있습니다.
“요양원에 안 보내요. 애기 엄마 같은 경우는 요양병원에 가면 금방 나빠져 버려요. 치매 걸린 사람들은 주위에 어울릴 사람이 없어요. 폭력적으로 막 변해버렸거든. 누가 그것을 받아 주냐, 안받아줘요.”
성미씨도 비슷합니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맡겼다가 마음이 불편해서 다음날 다시 데려오는 일을 여러 번 반복했답니다. 내가 치매에 걸렸다면 우리 엄마는 날 요양원에 맡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자신은 딸이니까 어떻게든 엄마를 모시고 싶지만 남편과 아이들이 걱정이랍니다. 가족들한테 항상 불안한 삶을 살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때가 많다고 했습니다.
“옆에서 겪어보지 않으면 이 안타까움과 힘듦은 모셔본 사람만 아는거야. 진짜 너무너무 힘들어요. 근데 왜 요양원으로 못 모시냐면 우리 엄마가 얼마나 고생해서 나를 키웠는데 엄마가 약해졌다고 갔다 버리는 거 같은 그런 거 있잖아요. 우리 엄마라면 나를 그렇게 했을까.”
알츠하이머협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치매 인구는 2013년 57만명에서 2030년 127만명, 2050년 271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중 나의 소중한 사람이 포함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나에 대한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 상상해 본 적 있으신가요? 3년인가 4년쯤 전에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85)를 모시고 있는 정성희(가명·49)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아버님 가서 뵙고 오면 너무 가슴이 아프죠. 사람이 지금은 너무 아무 것도 모르시고 식사도 본인이 하는 것도 아니시고 다 떠먹여 드려야하고…. 젊어서 당당하셨던 모습이 하나도 없으니까 마음이 너무 아프죠. 미래의 우리들 모습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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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