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자극하지 말자” 동기 조문 포기한 윤석열 지검장

입력 2017-11-08 05:32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은폐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 투신해 숨진 고 변창훈 검사 빈소에 수사 책임자인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법조계 안팎에선 유족들을 자극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조문을 포기한 것으로 분석했다.

서울중앙지검 등에 따르면 윤 지검장은 7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9시쯤 청사로 출근해 간부 회의와 캄보디아 검찰청 간부 방문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그러나 종일 변창훈 서울고등법원 검사의 빈소를 찾을지 말지를 두고 고민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지검장은 변 검사가 수사 대상이었던 ‘국정원 수사 방해 사건’의 책임자다. 윤 지검장과 변 검사는 사법연수원 23기 동기로 윤 지검장이 동기 중 맏형을 맡고 있다. 윤 지검장은 명석했던 변 검사와 친분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윤 지검장이 수백 차례 고민을 거듭하다 유족들에게 불편함을 줄 것을 우려해 결국 조문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수사팀을 이끄는 박찬호 2차장검사와 수사 실무를 맡은 부장검사들도 마찬가지로 조문하지 않았다.

문무일 검찰총장을 비롯한 대검 간부들은 6일 분소를 찾아 3시간 가량 머물렀다. 박상기 범무부 장관은 7일 저녁 빈소를 찾았지만 유족들의 항의에 10분 만에 자리를 떠야 했다. 빈소를 지킨 유족들은 “내 아들 살려내라” “왜 살아 있을 때 구명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없느냐” “어떻게 아침 7시에 아들도 있는 상태에서 압수수색을 들어오냐”며 오열했다. 유족들은 또 문 총장과 서훈 국정원장의 이름이 새겨진 조화를 치웠다. 검찰의 조문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앞서 변 검사의 투신 소식을 접한 윤 지검장은 윤대진 서울중앙지검 1차장에게 “병원에 가서 상황을 챙겨 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차장이 병원에 간 사이 박찬호 2차장과 긴급회의를 열었다. 병원에서 돌아온 윤 차장이 사망 소식을 전하자 윤 지검장은 고개를 떨군 채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윤 지검장은 수사 과정에서 변 검사에 대한 배려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혐의를 받은 이제영 검사와 장호중 검사장은 공개 소환된 반면 변 검사는 비공개로 조사를 받았다. 같은 날 소환 조사를 방은 서천호 전 국정원 2차장도 변 검사와 달리 공개 소환됐다. 검찰 관계자는 “혐의의 중대성 등 여러 요소를 고려했겠지만 변 검사를 배려하려는 윤 지검장의 의중도 일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 내부 게시판엔 변 검사를 추모하는 글과 더불어 윤 지검장을 비판한 이들도 많아다. 가혹 수사로 현직 검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범죄 혐의가 중대한 만큼 구속 수사할 수밖에 없다는 옹호 의견도 있었다.

변 검사와 함께 국정원 수사 방해 혐의로 수사를 받아 온 장호중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과 이제영(43) 대전고검 검사도 7일 구속됐다. 법원은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